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일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는 식물 없이는 동물도 못 산다는 논리의 합리성에 따라 그 말을 수긍한다. 주말농장을 일구다가 잡초 때문에 두 손 두 발 다 든 경험자라면 경험으로 납득한다. 만약 주인이라는 표딱지가 끝까지 살아남는 것에 주어지는 것이라면 지구에 남을 최후의 생명체는 식물일 거라는 주장에 나도 동의하겠다.
살아있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늙어가고 죽는다. 생애 주기가 인간보다 짧은 식물들을 보면서 '살아간다'를 목도한다. 그것이 싹 틔우고 키 크고 굵어지고 병들고 마르고 흙색으로 녹아내린다. 자식을 키웠지만 인간으로서는 같은 인간의 생을 볼 수 없다. 같은 시간을 함께 허우적대며 살다가 훌쩍 변해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될 뿐, 인간의 눈에 인간의 삶은 언제나 추상이다.
외과 시술을 통해 그것의 삶을 연장시키고 세대를 이어가도록 돕는 일을 해본다. 큰 땅에서라면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번식할 것이나 비좁은 화분 흙에서는 인간의 손이 자연의 일을 돕고 동시에 거스른다. 허리를 뚝 잘라 흙 없는 물속에 푹 꽂고, 힘껏 뭉쳐있는 뿌리를 힘써 분리시켜 분신을 만든다. 형제 가지의 성장을 위해 형제 잎들을 떼어내고 미래의 생명의 싹을 가차 없이 제거한다. 살기를 돕는 것인지 그것은 죽이고 그것의 카피를 살리는 것인지, 그를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 내 손은 그들의 조물주가 돼가고 있다.
식물의 자의식 없음에 놀란다. 물속에 꽂아 놓은 이파리 끝에서, 허리를 잘린 줄기에서 뿌리가 나온다. 줄기의 피부를 걷어내고 흙을 싸매 준 자리에 뿌리가 생긴다. 뿌리는 흙 속에서 물기를 흡수하고 줄기와 입을 자라게 하며 잎은 빛을 받아 양분을 만든다는 식물계의 질서는 거짓말 같다. 줄기 없는 잎에서 뿌리가 나고 줄기 중간에서도 뿌리가 난다. 뿌리 자리가 어딘가, 줄기와 잎의 정해진 자리가 어디인가. 제 몸에 칼집을 내고 저와 다른 종의 줄기를 싸매 놓아도 난지 넌지를 따지지 않고 스며들어 자란다. 아무도 그를 하나의 이름 안에 가둬둘 수 없다.
이를 식물의 생명력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생명력은 개체를 넘어선다. 생명력은 그것 자체를 모른다. 그것 자체를 살리는 것에 생명력은 관심이 없다. 생명력은 나를 살리지 않는다. 생명력은 생명 자체를 이어간다. 특정 존재의 생명을 이어가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구 상에 생명체는 벌써 사라졌으리라 확신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의 생명을 부여잡고 잇고자 애쓰는 인간 생명체는 사라지겠다. 식물이 지구의 주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