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팝싹

1.5평 방구석식덕생활

by 지니


주말부터 올여름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다. 그저께는 한차례 소나기를 퍼부었다. 굵은 빗방울이 갑작스럽게 후둑후둑하는데 아무래도 걔들이 맞고 뻗을 것 같다. 그 체구로는 한 방울이 직격탄이 될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올라가서 작은 투명 우산을 챙겨 내려왔다. 뒤꼍으로 가보니 열 개의 파프리카 싹이, 떡잎 위에 이제 겨우 새 잎을 내기 시작한 애들이 양쪽 뺨따귀를 교대로 맞으며 헤롱 대고 있다. 아슬아슬 고꾸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애들 머리 위에 투명우산을 씌웠다. 소나기로 보였고 다시 해가 나올 테니 투명 우산이 맞을 것이다. 햇볕 한 줄기도 아쉬우므로.


텃밭 한켠에는 지지대에 몸을 기댄 1층 할머니의 고추들이 슬렁거리고 있다. 지지대가 필요할 만큼 키가 큰 짙은 초록색 고추들이다. 한차례 휩쓸어 따먹고도 다시 달린 고추들이다.(나도 한 번 얻어먹었다)


"얘들 이번 장마에 못 견디겠죠?"


"너무 늦었지"


식용 식물 몇 종을 기르는 중이나 열매 따먹을 기대를 갖고 씨를 뿌리지는 않았다. 실험정신으로 재미로 틔운 싹들, 제 몸보다 몇십 배는 무거울 흙을 뚫고 고개를 내밀 때 그 탄생은 경이로웠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이 씨앗들을 인간의 씨와 동등한 생명체로 여겼다면 단지 나의 즐거움으로 씨를 뿌릴 수는 없지 않았을까. 잘 키워 먹어치우는 것만큼이나 잘 크지 못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무심함이 잔혹하다는 생각이······. (아, 너무 나갔다)


그러나 쉽게 보낼 수는 없다. 담장 그림자 때문에 어둠에 갇혀 있던 미팝싹(미니 파프리카 싹^^)들이 보여준 군무, 내 핸드폰 플래시를 받고 칼군무를 추어주었던 그날 밤, 나는 디즈니가 만든 영화에서 촛대와 찻 잔이 춤을 추는 일이 단지 상상이 아님을 목격했다! 어두운 뒤꼍에서 큰 소리로 웃는 광녀로 만들어준 싹들을 최고로 오래 지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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