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깔딱깔딱 위태롭던 은사철이 소생할 수 있었던 건 땅의 힘이었다. 땅의 힘이 어떤 건지, 그게 뭣이건대 죽어가는 식물을 살릴 수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진 건 극히 일부분이다. 한정된 화분이라는 공간에서 나와 배수가 용이해졌을 테고, 바깥공기의 흐름은 실내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갈 수 없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바깥의 빛도 마찬가지이다. 땅은 흙이자 공기이자 물이자 빛이다. 식물을 살릴 수 있는 땅이란 이렇게 섞이고 겹쳐져 분리되지 않는 자연이라는 총체가 아닌가. 더 이상의 깊은 관계성은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땅은 나의 은사철을 살리고 버베나를 살렸다. 빨간 꽃을 피운 채 우리 집에 왔던 버베나는 꽃이 떨어지고 잎이 마르다가 위쪽 잎이 회색으로 변했다. 작은 줄기에 잎 몇 개가 아직 초록일 때 혹시나 하고 텃밭 한쪽에 심었다. 은사철이 그랬듯 버베나도 며칠 동안은 별 조짐을 보여주지 않았다. 더 나빠지지도 더 좋아지지도 않는 상태인 동안,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눈을 맞췄다. 비가 오고 해가 쨍쨍 인 날이 몇 번 교체되고 버베나의 초록 잎이 하나 둘 더 생기기 시작하고 꽃망울이 다시 달렸다가 드디어 새빨간 꽃을 피워냈다. 1층 할머니가 함께 기뻐해 주었다.
이틀 집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 멀리 서울 쪽 하늘이 시커메지는 걸 보았다. 소나기가 올 모양이다 했는데 서울로 들어서니 짧게 강한 소나기가 왔고 집에 오자마자 텃밭으로 가보니 버베나 꽃대 두 개가 고꾸라져 있다. 아이고나~. 집으로 올라가 나무젓가락을 가져다가 고개를 떨군 꽃대를 기대고 빵 끈으로 살짝 묶어주었다. 꺾인 꽃대가 다시 붙진 않겠지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마음이어서 가만있을 도리가 없었다. 땅의 힘에 다시 한번 기댄다.
내친김에 로즈메리를 땅으로 옮겼다. 갑작스럽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서서히 왜소해져가고 있는 로즈메리였다. 다른 화분들과 같이 바깥에 내놓았는데도 건강해지지 않았다. 흙에 양분이 없나 아님 화분 흙이 젖은 채로 오래 있어서 뿌리가 상해 가는 건가 하여 사흘 전 뒤집어 보았는데 흙이 축축해있었다. 그게 로즈메리가 사그라드는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양분 있는 마른 흙으로 갈아주었다. 그런데 로즈메리 상태가 더 안 좋다. 회색빛으로 말라가는 잎이 위쪽에 여럿이다. 버베나 옆 땅을 파고 로즈메리를 심었다.
식물들을 너무 못살게 구는 걸까, 나로서는 살리자고 하는 짓인데. 두 번의 좋은 경험 이후 나는 땅을 식물 병원처럼 여기고 있다. 이 땅은 이곳에서 오래 사신 1층 할머니 말에 의하면 땅도 아니다. 옆 건물 리모델링할 때 나온 돌이며 시멘트 조각들이 깨끗이 수거되지 않아서 이 땅에 마구 섞여있다 했다. 해도 잘 안 드는 쪽이라 뭘 심어도 잘 안된다고. 그러나 난 그런 땅이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파보면 할머니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거칠고 많은 것들이 섞여 고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 땅은 죽어가던 식물들을 살리는 땅이 아닌가. 로즈메리를 심고 집으로 올라가며 난 또 한 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많이 안 커도 좋으니 다시 초록을 보여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