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미움받는 생명체를 보면 그것을 데려다 잘 키우고 싶어 진다. 아주 잘, 아주 사랑하며. 애정이 반작용으로도 생겨날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히는 대상에게 라면 동정의 여지는 없다. 식물은 그런 대상이었고 남의 집 화초가 말라 가는 것도 따라서 눈에 띌 리가 없는 일이었다. 친구 말마따나 늙는 증거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떻게 내 늙음이 식물에게 향하는 마음의 기원이 될 수 있을까. 말라가는 식물에 대한 연민이 어떻게 식물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나에게 생길 것인가 그러니 식물에 대한 급작스러운 몰두는 나 때문도 식물 때문도 아니고, 도대체 관심이랄지 애정 같은 건 어디 있다가 어떻게 사이를 파고드는 것일까.
작년 봄에 딸이 들고 들어온 화분 두 개가 잘 자라주었다. 흙이 마르지 않도록 만했다. 꽃집 주인이 되는 꿈을 가진 아가씨에게 내가 산 화분은 잘되지 않았다. 잎 가장자리마다 하얀 테두리가 있어 보는 재미가 있던 식물은 초록이 적어 양분 만드는 힘이 덜하다고 했다. 일산 장례식장 가던 길에 들른 야생화 화원 사장님의 말씀인데, 양분 만드는 힘이 온통 초록인 잎보다 부족하다면 걔는 그만큼의 양분으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허나 힘이 부족하다는 건 동일 투여의 상황일 경우 불리하다는 말이다. 물만으로 충분한 식물과는 다른 조건, 나의 은사철에게는 빛을 더해주었어야 했다. 같은 자리에 놓고 똑같은 주기로 물을 주는 평등함이 나의 은사철에게는 충분함이 아니었다. 화원 사장님이 그랬다. 은사철은 초록 일색인 것보다 이쁜 잎을 가졌지만 얘는 일종의 장애 식물이라고. 아~!
장애란······, 비장애와 생존 조건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애초의 조건이 다르다면 다른 만큼 다른 투여가 있어야만 생존 가능하다. 똑같이 물만 줘서는 안 되고 빛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줘야 하는 것이다. 특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평등은 물을 똑같이 주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맞게 물에 빛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반려 식물을 여럿 키우고 있는 엄마에게 은사철을 입원시켰다. 보름쯤 후에는 회생 기미를 보여 퇴원시켰으나 전과 똑같은 환경으로는 다시 건강해지지 않았다. 햇빛을 좇아 자리를 옮겨주었으나 베란다 안의 한번 걸러진 빛으로는 역부족인 듯 보였다. 건물 뒤편 작은 화단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갇힌 화분에서 풀려나와 땅으로 가는데 그러면 더 이상 나의 식물이 아니게 될 것임으로 망설였다. 나의 식물로 죽일 것인지 건물 사람들 모두의 식물로 살릴 것인지. 물론 그렇다고 살지를 보장받을 수는 없지만, 다시 바짝바짝 말라가는데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화단은 꽃나무들과 밭작물들이 줄지어 있다. 어느 곳을 비집고 들어가야 잘 나뉜 간격을 흩트리지 않을 수 있을지, 적당한 곳을 찾아 땅을 파고 은사철을 심었다. 매일 아침저녁 뒤꼍으로 나간다. 이곳에 산 지 1년이 넘도록 다섯 번도 안 가본 곳이다. 1층 할머니가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더니 은사철을 옮기란다. 할머니의 화단이었던가, 순간 흠칫! 거긴 햇빛이 잘 안 드니 이쪽으로 옮겨 심으라신다. 아~~. 오며 가며 내가 봐줄 테니 걱정 말고 옮겨 심으라신다. 아, 네~~. 나의 은사철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그 순간에 팍~!
아침에 나가보니 잎이 다 떨어져서 삐죽이 가는 줄기만 남아있던 자리에 새 잎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