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아니라 애호다

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by 지니


2004년 현재 10년 차 베란더(베란다+가드너)였던 이토 세이코는 5월 12일 자 식물 일기에 자신을 '무전지주의자'에서 변심하게 한 어머니의 말을 옮긴다. 자라는 대로, 피는 대로, 순리대로 자연에 맡기는 게 최고라는 자신의 철학이 바닥에 처박힌 얘기.


"화분이란 게 원래 부자연스러운 거니까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야 해. 식물이나 돌보는 사람이나 꽃도 피우고 잎도 잘 나고 그렇게 계속 변화가 있어야지." 정곡을 찔렸다. 자연 애호가라도 된 양 굴었지만 정작 베란더라는 존재 자체가 생명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부자연스럽지 않은가.(이토 세이코,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식물에 대한 나의 '열쭝' 상태는 두 달 조금 넘게 계속 중이다. 하루가 식물들과 밤새 안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초록 잎들을 매만지고 화분 자리를 옮기고 식물 영상을 보고 다시 무더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이는 식물 상태를 체크하고 서큘레이터를 가동하고 식물 책을 보고 식물에 대해 생각하고 식물 생활 글을 쓰고 잠자리에 든다. 자면서는 식물 꿈까지.


그러나 식물 애호가 식물 이외의 것을 애호하는 것에 비해 특별한가? 식물 애호가 옳은 것이라거나 우월한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한다는 그 자체에 의해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랑하는 대상에 따라 우위랄지 가치랄지를 매길 수는 없다. 식물 애호가는 따라서 자연 애호가 혹은 환경보호 운동가와 등치 되지 않는다.


식물 생활에 열정적인 주부 유튜버의 소개로 사 읽은 서머 레인 오크스(Summer Rayne Oakes)의 『도시 속의 월든』은 그래서 나에겐 좀 뜬금없는 책이었다. 덕분에 서머 레인의 영상을 열혈 시청하게 되었지만 책은 식물 애호 자체보다는 식물 애호의 '결과' 그리고 더 큰 '목표'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식물이 현대인의 심리 치료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식물에 대한 관심이 지구환경보전에 필수적이라든지 와 같은 흐름의 글.


글쎄, 나는 글쎄다. 식물 애호가 결과적으로 그 방향으로 가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나는 글쎄다.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현재 식물을 대하는 나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런 캠페인성 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전도자의 위치에서 쓴 것 같은 글의 실효성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식물을 키우면서 우울증이 완화된 사례가 있지만 그것은 식물 때문이 아니라 식물 '애호' 덕이라고 믿는다. 열쇠는 식물이 아니라 애호다, 사랑이다.


사람들을 식물로 이끄는 데는 중요하고 옳은 가치를 제시하는 것보다 식물에 미친 한 사람의 얘기가 더 힘이 세다. 그래서 식물 세계로 이끌려 들어온다면 결과로써 우울증 치료가 경험될지 모른다, 결과로써 지구환경보호 대열에 참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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