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에게 친절한 책을 찾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20년전 만해도 낯선 동네에 가면 헤매기 일 수였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정도의 고생은 감수해야했다. 물론 지도없이 혼자 고생해가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져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힘들어보인다. 반면 2019년 현재는, 낯선 곳에가도, 심지어 외국을 가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든든하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목적지와 내 위치, 목적지로 가는 방향까지 알려주니 무척이나 유용하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보면 길을 잃어 버릴 걱정이 없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통계학을 배우려는 분이 주변에 부쩍 늘어났다. 보통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그렇듯, 통계학 또한 입문 교재를 많이 보게 되는데, 통계학 입문 교재를 추천해 달라는 분들이 종종 있다. 기초통계 이후 단계라면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이 몇몇 있지만, 정작 입문교재를 추천해주는 게 쉽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통계학입문을 너무 어렵게 해서 그런가보다. 통계학을 처음 접한 대학교 1학년, 나는 통계학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1학년 때도 몰랐는데 군대가서 고등수학까지 모두 잊어버리고 복학하니 2학년때는 정말 하나도 몰랐다. 그래도 제대도 했으니 열심히 해보자는 각오로 1학년 때 배우는 '기초통계학' 책을 봤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책 제목은 '기초통계학'인데도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 시중에 나와있는 기초통계학 책들은 통계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느낌보다는, 통계학을 이미 알고있는 사람에게 더 알려주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내 실력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좀 더 초심자에게 친절한 책을 원했다. 그렇게 개념은 이해하지도 못한체, 내 학교 생활은 단순 암기를 바탕으로 당장 닥친 중간고사, 기말고사 넘기기에 급급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타전공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물리학이다. 우주를 다루는 학문이라 멋져보였다. 하지만 내 전공만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다른 전공을 공부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저 아쉬운 마음에 서점에서 교양물리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나오고 부터는 제약조건이 없어졌다. 이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평소 확률론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기에 양자역학을 꼭 공부해보기로 했다. 독학이므로 교재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구글링을 통해 얻은 추천목록은 그리피스, 샹카, 사쿠라이의 양자역학이었다. 추천책은 왠만하면 보는 편이라 세 책을 모두 보게 되었는데, 내가 물리를 마지막으로 공부해본건 대학교 1학년, 일반물리학을 공부하던 때였고, 그 때 내 물리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을 고려했을 때, 아무리 쉬운 교재라 하더라도 시작부터 양자역학책이 이해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사전과목을 먼저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리학과 커리큘럼은, 일반물리학 - 해석역학 - 전자기학 - 양자역학 순이다. 그래서 양자역학 전 단계인 전자기학 책을 보았지만 이해가 안가서 전자기학 이전 단계인 해석역학 책을 보다가, 그것도 이해가 안가서 일반물리학 책을 보고, 그마저도 이해가 안가서 고등학교 교과서까지 내려갔다.
양자역학부터 일반물리학까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역주행하면서 고등학교 물리1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놀랐다.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는 어려운 수식없이 혹시나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봐 '친절하게' 글로 개념설명을 해 주었다. 마치 "여태까지 답답했지? 내가 기초부터 설명해줄께"라고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그냥 평범한 교과서인데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물리1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니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책들이 너무나 친절하다는 것을 깨닳았다. 만약 고등학교 때 물리를 공부하고, 대학교때 자연스럽게 해당 교재들을 봤다면 재밌게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난이도 높은 책을 만들어 인류의 지적수준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좋은 입문서를 만들어 해당 학문을 접하고 싶은, 관심있는 사람에게 도움되는 책이 많았으면 좋겠다. 해마다 노벨상 발표를 하는 10월이 되면 사람들은 노벨상을 말하기 전에 노벨상이 나올 수 있도록 토양을 가꿔야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한글 교재가 그 토양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