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돌아가는 것이 꼭 시간 낭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끔 고향에 갈때면, 나는 항상 버스를 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터미널에가서 티켓을 산다. 늘 그랬다. 몇 년전 고향 근처로 가는 KTX가 생겼지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KTX는 고향까지 가지 않아 어짜피 한번 더 버스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속버스를 타면 값도 싸고 갈아탈 필요가 없었기에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기차를 타는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번에는 기차여행이 하고 싶어 KTX를 타게 되었다. 나름 여행 기분도 내볼까 김밥도 사고 음료수, 삶은 달걀도 사서 KTX에 몸을 실었다. 기차 좌석은 버스에 비해 여유 있어 편하게 느껴졌다. 창문도 크고 창밖 풍경이 우리네 사는 마을과 가까워 운치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버스 여행과 가장 큰 차이는 기차에서 내릴 때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항상 피곤에 쩔어있었는데 기차에서 내릴 때는 몸이 가뿐한 느낌이었다. 피곤함도 덜했다. 물론 이어지는 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하여 한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지만 한 시간 동안 역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근처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기차 여행은 기차여행만의 멋이 있었다. 고향이라는 똑같은 목적지에 가더라도 기차냐, 버스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나는 매사에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도착하기 전 차안에서 보내는 3시간은 버리는 시간,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버스보다 오래걸려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기차여행이, 기차를 타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을 선사했다. 마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신기했다. 어쩌면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시간 낭비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점을 찍는 여행이 아니라 선을 그리는 여행을 하라고. 점을 찍는 여행은 나중에 자신이 방문했던 장소는 기억날 지언정 그 여정은 기억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는건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최단거리, 최단시간만을 계획했다. 우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 최단 루트를 계획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은 내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중간에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땐 화가 났고, 끝내 목표에 도달하더라도 버스에서 내릴때처럼 피곤에 절어있었다. 피로를 회복하기도 전에 바로 다음 목표를 세우고 또다시 목표달성까지의 최단 루트를 계획했다.
출발지와 목적지만 존재하는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지로 순간이동하지 않는다. 어떤 여행이던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고, 그 사이 여정이 존재한다. 목적지가 같은 여행이라고 할 지라도, 어떤 여정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그 여행은 완전히 다른 여행이 될 수 있다. 점과 점사이를 잇는 선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내 그림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어떤 개념, 문제에 접근할 때 한 가지 방식으로만 접근하고 풀기보다, 처음엔 기차를 타고 갔다면, 다음엔 버스로 가보자. 그러면 기차를 타고 갈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보이고,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전혀 상관 없던 점들이 선으로 이어지고 전체 그림이 달라진다. 그렇게 수십년을 거쳐 내 그림이 완성된다. 공부를 하는건 여행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여행은 어떨까.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성공? 죽음? 목적지가 어디던 최단 루트만 생각하고 달려간다면 목적지에 도달했을때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버스에서 내릴때 처럼 온 몸이 피곤에 절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내가 달려왔던 여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 주위에 있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모두 과정일 뿐이다. 어찌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은 한 순간이므로 인생의 99.99%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할 수 있다. 좀 과장하면 인생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만약 목적지에만 집착한다면 내가 고향으로가는 3시간 동안 아무것도 남지 않았듯 인생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