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력이 좋으면 일상이 좀 더 편해지는 듯 하다.
우리나라 교육을 비판할 때 나오는 말 중 하나는 지나치게 암기력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나도 암기력 이외에 필요한 능력은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일까, 스스로 암기력을 경시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면 가능한 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면 암기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예컨데, 친구 전화번호는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으므로 외울 필요가 없다. 필요할때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다른 정보들도 마찬가지다.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정보라면 굳이 기억하지 않는다. 외우는 시간이 아까웠다. 사소한 정보를 외우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외우지 않는 이 방법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외우는데 시간을 소모하지 않으므로 시간절약을 할 수 있고, 그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법의 단점은 정보를 찾는데 시간이 걸려서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여지껏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고 생각했는데, 요즘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다소 외우는 수고로움이 있다고 해도 어느정도는 외우는게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 습관을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마치 하드디스크와 CPU만 있고 메모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반면 내가 어느정도 외우는 시간을 투자한다면 하드디스크와 CPU만 있던 나라는 시스템에 메모리를 추가하는 것과 같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메모리가 없는 컴퓨터 보다는 있는 쪽이 훨씬 성능이 좋으며 애초에 컴퓨터의 정의가 CPU+메모리 아니었던가. 즉, 일상에서도 정보가 내 머리에서 즉각적으로 나온다면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개발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더 편하게 도와주기 위해 개발도구를 지속적으로 추가하면 정말 나는 그만큼 편해질까? 환경이 바뀔때마다 갖춰야할 개발도구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작업 가능한 장소는 줄어든다. 나 스스로 편해지고자 만든 환경들이 오히려 생산성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반면 내가 어느정도 코드를 기억하고 있다면 내게 필요한 도구는 메모장 하나 뿐이다. 내가 편해지고하자는 정도만큼 추가적인 개발도구가 필요한 셈이니 결국 똑같은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