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내면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을 ‘직면’이라 부른다.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100시간 이상의 수련을 거쳐야 한다. 그 중에 하나는 ‘심성수련’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수련회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2박 3일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코치와 수련자들이 먹고 자며 하는 일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 다 보기’이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직업상담을 상담을 할 때 주로 만났던 내담자들은 뒤늦게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를 고민하는 성인이었다. 엄마가 하라는 데로 여차 여차 공부해서 대학까지 갔는데. 문제는 '과'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대 준비를 위해 죽어라 했는데 칼을 잡는 일이 두렵고 피를 보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어떻해야 할까요? 그럼 다른 과로 전향을 하거나 어떤 공부를 다시 할지 정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뒤통수를 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내게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할지 모른다고 해결을 위해 찾아온다. 12회기 코칭상담을 진행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자기탐색’이다.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주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자기탐색이 이루어지면 마지막 진로설계를 할 수 있다. 참고로, 내가 주력한 상담은 '진로코칭'이었다.
‘심성수련’은 자기탐색을 2박 3일간 한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길래?
1) 시작은 별칭부터 짓는다. 자연물을 따와 자신이 닮고 싶은 혹은 자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내 별칭은 ‘햇살’이다. 햇살같이 밝은 빛을 지닌 사람. 어둠을 밝히는 존재이자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다. 별칭으로 자기소개를 하며 자신의 색을 알린다.
2) 마지막은 묘비에 세길 자신의 묘비명을 짓는다. 죽으면 들어가는 실제 ‘관’을 두고 그 속에 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내면의 두려움에 직면한다.
이 때 내면을 들여다보기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울부 짓기도 하며, 거울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있다. 직면하기 두려운 것이다. 두려움에는 2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첫째, 내면의 어두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다만 그것을 마음 속에 꼭 꼭 간직한 채 절대 들춰보지 않는 사람이다. 대부분 '밝은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둘째, 내면의 어두움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단지 무엇이 그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문제였는지 '직면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유형은 두려움을 극복하면 된다. 하지만 첫 번째 유형은 상담이 어렵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온 청소년도 많다. 하지만 매 회기마다 갖은 핑계와 변명을 대며 상담을 거부한다. 이런 경우 부모상담이 함께 이루어지는데 대부분 부모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이가 거부하면 부모도 거부할 확률이 높다.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랐으므로. 자식의 모습은 묘하게 부모와 매우 흡사하게 닮아있다. 이럴 경우는 부모상담도 함께 이루어진다. 부모 자신도 상처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릴 적 어느 부분에서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마음이 닫혀진 경우, 그 상처는 고스란히 자식에게로 되물림 된다. 그 상처는 외형적인 생채기 이면의 아이의 뒷모습, 배우자의 닳은 옷깃, 타인의 서글픈 미소, 외로운 마음에도 투영이 된다. 마치 내 모습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고 나아갈 수 있다. 과거를 아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자 미래로 향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필연적인 일이 일어났다. 친구 K가 청접장을 편지삼아 내게 써주었던 편지가 생각나서 꺼내 보았다. 살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대부분 용기와 위로를 주는 말들이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타인이 써준 편지들을 보면 나를 일으켜세우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5년만에 페이스북을 들어갔다. 우연인지 그 친구의 피드가 떴고, 인사말을 전하며 그 때 써준 청첩장 이야기를 꺼냈다. 그 후,
“50번째 구독자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내 브런치 구독자수가 드디어 50명을 돌파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마운 마음에 커피쿠폰을 선물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K였다. 나의 축하 메시지에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한 번의 거짓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결국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는 뜻밖의 고민이었다. K는 위축되어 있었고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배우자에 대해서 예의도 없고, 존중감도 없었던 거 같아. 거짓말을 한번 했던게.. 나에게도 어떤이유는 있었지만 그건 다 핑계겠고.. 노력을 하던지, 현재 상태를 인정하고 시작해야 되는데 그 걸 둘 다 하지않았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거고..”
“너 자신을 너무 탓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너도 지금 이 순간은 위로가 필요한 존재니까.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은 것만으로도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 고생 많았다..
운명의 엉킨 실타래는 풀거나, 자르고 다시 묶어 잇거나. 시간과 아픔의 기로에 서 있네. 어느 것이든 쉬운 결정은 아니라고 봐. 너의 성격상 다른 말은 필요 없을 것 같고. 어떤 결정이든 너의 선택을 응원한다는 말 해주고 싶다."
지금껏 내가 본 K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진실된 친구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 모습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상황에 따라 가면을 벗고 쓴다는 사실이었다. K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한 듯했고, 그 답을 찾은 듯이 보였다. 직면을 시작한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만으로도 나는 칭찬과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Girl at the mirror
결혼생활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어쩌면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을 내면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라 현재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띄고 있다. 상대와 환경에 따라 취하고 벗을 뿐. 다만 인정을 하고 노력을 하느냐, 책임을 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반성하고 글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는 증거라고 본다. 그 것만으로도 그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 시작을 애초에 하지도 않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으니까. 결국 내면의 두려움을 직면하는 일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는 달랐다. 오늘 내가 내민 위로가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과 마주하는가?
당신은 얼마나 내면을 비춰보는가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그 두려움을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
2021년 1월 30일
내면아이라는 두려움에 관하여.
작가의 서랍 속 이야기를 오늘도 살포시 꺼내봅니다.
*사진출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글.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