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갔어.
작년 겨울 유미와 한스는 멕시코의 세노떼 위에 서서 대치중이었다. 사람들은 풍덩풍덩 잘도 뛰어내린다. 석회동굴의 상판이 무너져서 만들어진 작은 연못인 세노떼는 안을 파낸 호박 같다. 멕시코에 가면 세노떼가 아주 많은데, 한 여름에도 물이 시원하고 그늘이 져서 훌륭한 물놀이터가 된다. 가면 수영을 하기도 하지만, 다이빙이야 말로 필수 코스다.
겁이 많은 유미는 겨우 3미터 남짓한 세노떼 위에 서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으아아아, 정말 뛰어내릴까? 아니야, 난 못해, 아냐, 별로 안 높아, 그래도 한 번 해볼까? 하면서 서로 먼저 뛰라고 양보 아닌 양보를 하고 있었다. 퐁당퐁당, 잘도 뛰어내리는구나. 저런 꼬마들도 잘도 뛰어내려. 유미는 원래 위험한 장난이라면 질색이었다. 바닥에 돌이 많아서 계곡에서 노는 것도 싫어한다.
세노떼는 울창한 나무로 둘러 싸여 어두컴컴한데, 깊은 바닥은 하얀 모래인지 석회인지가 비쳐 에메랄드빛으로 빛났다. 어둠 속에 어른거리는 빛이 사람들을 조용히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세노떼들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어 시원한 동굴 바람이 올라온다. 유미는 심장이 툭툭 소리를 내면서 뛰고, 약간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망설이며 절벽에서 1센티미터 떨어진 가장자리에 발을 놓는다. 다시 뒷걸음질 친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소녀의 눈치가 느껴진다. 다시 절벽 쪽으로 다가갔다.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안 뛰어도 그만이지만, ‘이것도 못 뛰어내리면서 이직은 어떻게 하겠어?’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그래, 이것도 못하는데 무슨 다른 도전을 한단 말이야’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유미의 발이 저절로 허공 쪽으로 움직였다. 어어어, 하는 사이에 유미는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가 물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물속에 들어갈 때의 압력이 몸을 움켜쥐었다. 잠시 꼬르륵하더니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심장이 뛰는 게, 더 이상 불안이 아닌 기분 좋은 흥분으로 느껴졌다.
어푸어푸 헤엄을 쳐 나오니, 한스가 깜짝 놀란 눈으로 맞아주었다.
“야, 진짜 뛰었네. 대단해.”
“응, 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갔어. 이것도 못 뛰면 이직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한스는 후후후 웃으면서 말했다.
“이야, 진짜 이직하고 싶은가 보네.”
그리고는 풍덩! 하고 세노떼로 뛰어들었다.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유미는 멕시코에서의 다이빙 장면을 회상했다. 생각하면, 호수 아래에 물결과 함께 고여있는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면 어두운 물속에 펼쳐진 빛 어른거림과 어두운 동굴을 입구가 떠올랐다. 빛이 닿은 곳까지 에메랄드 빛으로 밝게 빛나는 호수 바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대처럼 선명했다. 일렁이는 물결에 감싸인 몸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어두운 새벽은 계속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