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치열한 아침
뜨거운 콩나물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서 한입 가득 물었다. 앗 뜨뜨, 유미와 한스는 오랜만에 먹는 콩나물 국밥에 반해서 매일 새벽 이곳을 찾았다. 황태와 오징어의 비릿함과 아삭거리는 콩나물의 조화, 영혼을 녹이는 듯한 감칠맛이 마음을 감쌌다. 시차 때문에 눈이 일찍 떠지는 매일 새벽이면, 유미와 한스는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강남대로를 걸어 24시간 콩나물 국밥집을 찾았다.
콩나물 국밥집에는 고단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유미와 한스처럼 떠돌이들도 찾아왔고, 아침부터 바쁜 배달부들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해장을 하러 찾아온, 아직 술이 덜 깬 청춘들도 있었다. 친구들과 재미로 마신 술이 아니라 일로 마신 술 같아서 마음이 짠 했다. 유미는 아닌 척 청년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과 다른 듯 같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밥을 먹었다.
후 하고 입김을 불자 짭조름한 냄새와 하얀 김이 올라왔다. 한국이 좋긴 좋다. 한스가 말했다. 그렇지. 아무리 해외생활이 편하고 좋아도, 역시 한국인은 한국이 좋은지도 몰라. 유미가 맞장구를 쳤다. 청년들은 해장을 하러 와서는 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다. 더 많이 취해서 오늘 오후만 돼도 기억나지 않을 허세와 우울을 쏟아낸다. 언성이 점점 높아지기에 식당을 나선다. 아직도 강남대로는 어렴풋하다. 아직은 밝지 않다.
한국의 겨울은 추웠다. 20년 전에 상경했을 때보다 훨씬 더. 몸이 둔해질 정도로 여러 겹을 입고 천천히 강남대로를 건넜다. 한스는 중간에 멈추어서 핸드폰으로 새벽의 강남대로를 찍었다. 뉴욕의 대로를 찍는 외국인처럼 촌스럽게, 도시의 풍경에 감탄하면서. 쭉 뻗은 8차선인지 10차선인지 되는 넓은 도로의 양옆으로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었다. 아직 아침도 되기 전인데, 텅 빈 도로와 빌딩숲이 차가우면서도 치열한 느낌은 왜일까.
“호호, 촌스럽게 그런 걸 왜 찍어.”
한스는 텅 빈 도로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아니, 멋있지 않아? 우리나라 진짜 많이 발전한 듯. 진짜야 진짜 많이 발전했어”
“그렇긴 하지.” 유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아까 콩나물국밥집에 애들 말이야. 살기 힘든 것 같지.”
한스는 강남대로 쳐다보기를 멈추고 대답했다. “그런 거 같더라. 요즘, 취업도 잘 안되고 들어가도 변변치 않은 데도 많고 하니까.”
유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지방국립대를 나와서 유학 언저리에도 가 본 적 없는데, 국제기구 이직이 가능할까? 안 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한스는 그런 유미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말을 이었다. 안 해보고는 몰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해보는 게 중요하거든. 그러면 길이 조금씩 조금씩 열려.
유미는 한스의 말에 기울이며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것도 정해져 있지는 않다. 안 해보면 몰라,라고 속으로 되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