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해외타령이 시작된 건 언제였을까
유미의 아빠는 참치를 잡는 원양어선을 11년간 탔다. 유미가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원양어선을 타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으로 아주 돌아오셨다. 아빠 입장에서는 20대 후반에 한국을 떠나 마흔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 셈이다. 그러니 어린 시절 유미에게 아빠는 몇 년에 한 번씩 볼 수 있는 털보 아저씨였다. 삼 남매는 아빠를 본 기억이 없기에 그다지 그리워하지도 않을 수 있었다. 외삼촌들이 아빠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아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외삼촌들이 곧잘 등장한다.
유미는 오랫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시골집에 들렀다. 예전 앨범들을 정리하다가 아빠가 배를 타기 전에 받았던 ‘가다랭이 간부 10기 과정 수료증’을 발견했다. 왼쪽에는 영어로, 오른쪽에는 한국어로 쓰인 수료증을 찬찬히 읽었다. 유엔개발계획 한국사무소장(UNDP resident representative in Korea)이 서명했고, 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al Organization)와 한국어업기술 훈련소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과정이다. 파란 테가 멋스럽게 둘러져 있고, 한국 정부 마크, 유엔 마크, FAO 마크, 직인들이 빼곡하다. 수료증의 번호는 No.840, 이 과정을 통해 배출된 840번째 어부였던 것일까? 아빠의 이름과 본적, 생년월일까지 명기되어 있다. 왜 본적까지 표기했을까, 예전에는 신분을 특정하기가 좀 더 어려웠을 수도 있고, 국제기구 입장에서는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1980년 11월 14일, 수료증 날짜를 보니, 유미가 태어난 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먼바다로 떠났음을 알 수 있었다.
아빠가 해외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유미는 열대 바다의 냄새와 분위기를 맡았다. 안 그래도 꼬불꼬불한 머리가 꽤 풍성하게 자라 있고, 항상 헐렁한 바지에 헐렁한 셔츠, 종종 맨발이거나 슬리퍼 차림이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중에 한국에서 생활할 때보다 훨씬 시원시원해 보였다. 물론 배에서의 일은 무척 힘들었으리라, 작은 선실에서 1년에서 3년까지 지낸다. 중간중간 정박지에서의 휴식을 제외하면 검푸른 바다 위에 새벽부터 이어지는 노동과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답답함, 감히 상상이 가지도 않는다. 그래도 저 멀리서 불어오는 이국의 향기를 부러워하곤 했다. 아빠가 가져다준 커다란 소라에 귀를 대면 윙윙대는 먼바다의 소리가 들렸다. 철없이 낭만적으로 생각하곤 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남자들과 까만 흑인들과 함께 야자수가 늘어선 해수욕장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바 데크에서, 커다란 배들이 정박된 항구에서 찍은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방랑하는 청년의 허허로운 시원함이 느껴졌다. 유미는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아빠에게 그때의 기분을 물어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엄마와 아빠는 1년의 연애 끝에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같이 살다가 첫째인 유미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 즈음에 아빠는 경제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원양어선은 힘들고 위험한 만큼 벌이가 나쁘지 않았던 듯하니 말이다. 갓난쟁이를 낳은 24살의 엄마를 남겨두고 아빠는 바다로 떠났다.이등항해사에서 시작해 선장이 되기까지 9년이 걸렸다. 엄마는 가끔 선장이 되어 월급도 오른 시기에 그만둬버린 아버지의 결정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 이후 이어진 경제적 힘듦과 사건사고를 만날 때마다 더 그런 생각이 들었으리라. 푸념을 듣다가 유미는 물었었다. “그런데 아빠는 왜 그만뒀데? 선장이면 좀 편한 거 아냐?” 그러면 엄마는 대답했다. “너네 아빠가 편지에 썼더라고. 바다가 너무 무섭다고. 밤에 깜깜한 바다를 보고 있으면 너무 무서워져서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커다란 바다 위에 이러 저리 흔들리며 떠 있는 배, 갑판 위에서 바라보는 막막하리만치 깊고 넓고 검은 바다… 모녀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유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왔다. 엄마가 아빠를 마중 나가는 동안 삼남매는 며칠간 외삼촌 집에 맡겨졌다. ‘아빠가 완전히 돌아온다고?’ 실감이 나진 않았지만, 이제부터 아빠랑 놀러도 가고 아빠가 맛있는 것도 사주겠구나 하는 기대로 설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저녁 무렵, 외사촌들과 TV를 보고 있는데 아빠라는 사람과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미는 조금은 쭈뼜거리며 인사를 했던 듯하다. 아빠는 유미와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꼬맹이 남동생을 안았던가, 그렇게 아빠가 돌아왔다. 유미는 아빠에게서 먼 바다의 냄새를 맡았다. 역마살이 유전되려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