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죗값이 더 큰가
유미는 저녁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냉동되었던 연어를 꺼내 버터에 굽고, 감자와 브로콜리를 삶아서 곁들였다. 클레어는 시간에 맞춰 거실로 내려왔다. 오늘따라 그녀의 얼굴에는 왠지 피곤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평소 때의 차분하고 힘찬 표정이 무언가에 침범당한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거실의 창 너머로 보이는 보름달 빛을 받아 얼굴의 음영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클레어는 평소보다 더 말이 없었다. 말없이 연어를 먹고, 캐모마일 차를 마셨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달을 바라보고,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연어도 반 이상 남아있고 감자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클레어, 무슨 고민이 있어?” 유미는 물었다.
클레어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아 하는 모양으로 벌어진 입은 잠시 멈춘 채로 망설였다.
“나,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유미는 오,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나가는 게 가능했던 거야?
“….그런데 …. 어떻게?”
“나가는 건 가능할 거야. 경비행기를 전세내면… 들어오는 건 좀 어렵겠지. 판데믹이 끝나기 전에는. “
“오…! “ 유미는 다시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게 긍정의 의미인지, 불안함인지, 낙담인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클레어, 근데… 나쁜 일이 생긴 거야? 걱정이 많아 보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그런데 나가면 한동안 못 돌아오니까,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게 걱정돼. 아무 생각 없이 정신없이 돈을 벌던 삶 말이야.”
유미는 클레어가 걱정하는 게 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선뜻 ‘나도 같이 나가자’라고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의 원인이 거기에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클레어는 말을 이었다. “너나 나나… 뭔가 악의를 가지고 나쁜 짓을 할 위인은 못되지. 하지만 생각 없이 사는 게 그렇게 큰 변명이 되는 건 아니었어. 이제 와서 말이지만.”
유미는 여전히 뭐라고 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보름달이 창문보다 더 높이 올라가 실내는 다시 균질하게 어두침침해졌다.
“일단 오늘은 자고 내일 또 얘기하자.” 클레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유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미는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을 뒤척이다 자정이 되어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에 엄마가 또 나왔다. 여름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새끼강아지 4마리가 든 까만 봉지를 들고 있었다. 숨이 막혀 죽은 새끼강아지의 몸이 너무 작아서인지, 까만 봉지에 귤이라도 들었나 싶게 평범해 보였다.
“엄마, 엄마는 알고 죽인 거고, 난 아니야.”
엄마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얘들을 살려두면 온 논밭을 헤집어 놓고 또 금방 새끼를 치잖아. 엄마도 좋아서 그런 게 아니야. “
유미는 납득할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강아지를 죽인 엄마와 그걸 몰라서 못 말린 자기 자신의 죗값을 비교했다. 그렇게 강아지의 목숨을 살려도 결국 책임지지는 못하는 죗값, 그 모든 것에 무관심한 채로 쳇바퀴 돌리듯 살아온 죗값… 치러야 할 죗값이 자꾸 늘어서, 유미는 억울해하며 뒷걸음질 쳤다. 엄마는 자꾸 다가왔다. 손에 든 것을 자꾸 넘겨주려 한다. 그건 엄마의 죗값인데 왜 나한테 주는 거야.
“아냐 이건 다른거야.”
착 가라앉은 엄마의 목소리에 다시 보니 엄마의 손에 든 것이 작은 헝겊 뭉치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는 안심하라는 듯 다시 말했다. “이건 다른 거야.” 유미는 엉겁결에 헝겊 뭉치를 받아 들고 속을 들여다 보았다. 갓 태어난 강아지 세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또 새끼를 낳았더라. 여기서부터는 너한테 줄게.”
헝겊 너머로 뜨거운 감각을 느끼며, 유미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사방은 깜깜했다. 바람마저 자고 있는지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없다.
유미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멍하니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끝에 남아있는 생명의 감촉이 비릿한 냄새마저 피워 올렸다. 자칫 잘못하면 죽어버릴 것처럼 작은, 눈도 뜨지 못한 생명체들이 유미의 결심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유미는 새벽 수영을 나갔다. 해가 뜬 직후의 바다는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바다사자들은 아침해가 모래를 데우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거리고 있었다. 유미는 으아 하면 단숨에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물이 몸에 감기는 느낌을 뿌리치고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어린 바다사자 한 마리가 궁금한 듯 따라 들어왔다. 물속에서 나선을 그리며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헤엄쳤다.
물밖로 나오니 클레어가 해변가 작은 바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수영을 좀 즐겼어? “ 클레어가 물었다.
차가운 물을 뚝뚝 흘리며 유미가 말했다. “최고네. 다음에 또 오자. “
“그러자. “
유미와 클레어는 집으로 돌아가 귀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