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루나 - 오쵸 4

Ocho 4

"사랑은 중요한 거죠. 하지만 어떤 사랑인지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사랑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이란 말로 포장한 욕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해요. 오욕과 번뇌에 휩싸인 생각과 행동들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요.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대부분은 집착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자윤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날 선 말투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기분을 언짢게 했다. 표정을 관리하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성직자이시다 보니 역시 고차원적인 해결 방안들이 많네요. 그렇지만 자윤 교무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답변이 자칫 일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무님과는 다르니까요. 꼭 사랑이 고차원적이어야만 할까요? 같이 있고 싶고, 함께하고 싶고, 내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 마음도 사랑 아닌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마음의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윤은 여전히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 계신 네 분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자제하고 단련시켜 오신 분들이에요. 기도하고, 묵상하고, 명상하고, 공부하며, 자신을 단단히 단련하면서 내면의 문제들을 해결한 경험이 있으세요. 그 경험이 있기에 청년들에게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거죠. 거기에 굳이 대중과 우리를 분리하려는 인식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네요. 결국 모든 것은 통하기 마련이니까요."

자윤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녀의 말은 마치 누군가를 겨냥한 것 같았다.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귀가 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듣기로는 청년들과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나는 최대한 웃으며 좋은 말로 넘어가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마치 청년들의 사랑은 집착이고, 자신의 마음에는 그런 게 없는 듯이 말씀하신 것 같아서요."

애써 흥분을 억누르려 했지만, 속에서는 감정이 요동쳤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혹시 스스로 생각하시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보통 우리는 그걸 남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고도 이야기하죠."

자윤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말에 담긴 힘이 강해졌다. 그녀의 말을 듣고 완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입을 열면 쏟아낼 말이 많았지만, 순간적으로 오른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오히려 그 고통이 입을 닫게 만들었다. 이를 악물며 다시 감정을 눌렀다.

그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연훈 스님이 자연스럽게 나섰다.

"모든 마음공부는 결국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배우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도 그걸 바라실 테고요."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도 사랑이고, 중생들의 갈애도 사랑이죠. 하지만 같은 사랑이라 해서 같은 결과를 불러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확연히 파악해서 우리에게 도움 되는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조금 더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선택해서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나누기만 하다 보면 문제만 생기게 됩니다. 조금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면 좋을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면 됩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같이 고민해 보면 되겠죠.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모인 것 아니겠어요. 허허."

연훈이 나선 덕분에 뱉으려던 말을 삼킬 수 있었다. 자애로운 그의 미소를 보며 조금은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윤의 표정은 차가웠고, 나 또한 그녀를 곱게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감정을 추슬렀다.

"자윤 교무님,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일이 많고, 이런저런 사건들이 겹치다 보니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중생의 어리석음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자윤에게 사과했다. 자윤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스님, 스님은 결혼도 연애도 안 해보신 분이 왜 이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율이 분위기를 환기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꼭,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건 아닙니다. 타고나는 것도 있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학습이란 게 가능합니다. 또 제가 지금이야 이렇게 머리를 밀고 있지만, 머리를 기르고 연애 시장에 나가면 모든 남자가 긴장해야 할 겁니다. 하하."

연훈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율과 연훈이 웃으며 주고받는 농담에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옆에 있던 수호도 몇 마디 거들며 상황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 덕분에 조금은 정신을 차린 채 무사히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들도 바쁜 일이 있는지 서둘러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들을 보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까지 따라가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본 후에야 자리로 돌아와 짐을 챙길 수 있었다. 짐을 정리하며 서둘러 가려하는데, 창문 너머 저 멀리서 누군가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수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