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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Oct 18. 2024

글쓰기

고래도 춤춘다는 그 칭찬.

 내가 처음 글쓰기를 배운 건 국민학교 5~6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땐 그렇게 글짓기 과외 같은 게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용케 동네 친구 몇 명과 묶어서 글짓기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해 줬다.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은 내가 쓰기만 하면 잘 썼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셨다. 그때 사실 내가 글을 잘 썼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린 내 마음에 글을 쫌 쓰는 아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게 중요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 시절 이 수업을 받으면서 내가 키워왔던 건 자신감? 잘한다는 마음가짐? 성공 경험이라고 할 수 있나?  여하튼 그때 들었던 칭찬이 구체적으로 어떤 거였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은연중에 '나는 글 잘 쓰는 아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컸던 것 같다. 나 혼자만 알아주는 것이었더라도.


 이런 것들이 글쓰기에 주저함을 거의 없애줬던 것 같다. 그건 중학교에 가서도,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어졌다.  중학교 때는 자진해서 글쓰기 대회도 찾아보고, 고등학교 때는 어설픈 스토리를 써서 친구들과 돌려보기도 했었지. 대학 갈 때는 당당하게 논술 전형을 응시했고 결과는 떨어졌지만 그때 썼던 논술에 대해서도 스스로 대단히 만족했었더랬다. 그 무렵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만든 카페에서도 꽤나 글 좀 재미있게 썼던 것 같고 (내 생각). 여하튼 남의 평가와 상관없이 만족하면서 살아왔다. 정말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글쓰기 수업 시간에 야심 차게 제출한 글에 대해서 혹평을 받았지만 다들 관점이 다를 수 있으니까, 라며 넘겼다. 도대체 이 자신감은 어디서 온 걸까. 진짜 관련되어 그때 글짓기 선생님 말고는 나에게 칭찬해 준 사람이 없었지만, 처음 써본 글쓰기에 대해 처음 칭찬을 받았는데 그게 뭔가 내 글짓기 삶의 근간이 된 것 같다. 나는 재미있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그건 어릴 적 그 선생님만 내게 해줬던 칭찬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걸 깨닫는데 이미 여러 해가 지나 나의 자화상은 글 잘 쓰는 아이가 되었 버렸지.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잘 쓴다 칭찬받고 얻었던 자신감이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니.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또 글을 쓰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그 순간의 느낌과 생각들을 고스란히 녹여낼 수 있는 게 좋다. 잘 녹여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나는 커피를 잘 타는 줄 알았다.


예전에는 커피, 설탕, 프리마가 따로따로 통에 담아 있어서 커피를 마시려면 2:2:2로 직접 타서 물도 적당히 부어서 마셔야 했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는데 내가 타다 주면 그렇게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손님이 와도 진짜 잘 탄다면서 시키고. 그래서 나는 내가 또 커피 마스터인 줄 알았지. 기가 막히게 맛 조합을 잘하는. 그건 아마 내가 20살이 넘었을 즈음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내가 탄 커피가 사실은 그다지 맛있는 게 아니었다고. 하지만 노련한 우리 엄마는 그렇게 내가 탄 커피를 항상 맛있게 드셨다. 비슷하게 나에게 손이 아주 야무지다며 마사지를 종종 시켰었다. 정말 너무 시원하고 구석구석 잘 안마한다고. 그래서 또 이건 30살 즈음까지도 진짜 믿었다. 사실 내가 내 어깨 마사지할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으니 시원하다고 하니 시원한 줄 알았지. 영감님한테 마사지해 주니 도대체 어디를 마사지하고 있는 거냐는 소리를 듣기 전까진.


 어쩌면 내 성향이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작은 칭찬을 마음에 품고 키워가는. 살면서 하나뿐인 칭찬에도 크게 기뻐하며 두고두고 살펴보는 그런 성향. 그러고 보니 내가 들은 말이면 작은 칭찬도, 작은 말 하나 계속 마음에 담아 곱씹고 곱씹고 하는 것 같다. 아마 말을 한 사람은 잊어버렸겠지만 별거 아닌 말도 나에 관한 이야기면 크게 해석하고 담아두기. 문제는 반성만 하고 행동이 쉽게 고쳐지지 안 하는 게 문제지만. 바뀌지 않을 거라면 그 말을 빨리 버려버려야 하는 데 그러지도 못하면서 꼭꼭 싸매고 있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쓰잘데 없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건지도.


 실제와 상관없이 들었던 몇 가지 부분들에 대한 칭찬이 점점 자신감이 생기게 한다. 그냥 잘한다가 아니라 칭찬의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미술 학원을 다녔을 때 사람을 잘 못 그리니 크로키 연습을 많이 하라고 했는데. 물론 크로키 연습은 올바른 지도였지만 여전히 나는 사람을 잘 못 그린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주로 그리는 사람과 미술 학원에서 원하는 사람 그림과 차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크로키 연습을 해도 줄일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 칭찬을 해줬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못하는 걸 어떻게 칭찬할 수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칭찬을 하는 것보다 지적을 하는 게 훨씬 편하고 쉽다.


 그냥 잘한다 잘한다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걸 잘하는지 콕 찝어서 칭찬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에게도 마음에 콕 박힐 수 있지 않겠는가. 칭찬이나 지적 모두 상대방이 잘 되길 바라서 하지만 칭찬은 좀 더 많이 상대에게 관심을 두고 찾아봐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콕 찝어서 좋은 말을 해주었다면 그건 그의 성의도 같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보통 그런 노력은 아부로 이어지는 편이 많지만 나에게는 얻을 것도 없을 텐데. 얻는 것도 없이 해주는 칭찬이라니. 진짜 나를 좋아하는 거였어?


 이제 아이들을 키워보니 좀 더 알 것 같다. 아이에게 칭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내가 사랑받고 관심받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그런 걸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다. 아이가 먼저 한 작은 예쁜 짓에 깜짝 놀라며 칭찬해 주고. 어설퍼 보이는 게 많지만 그래도 잘한 부분을 찾아내어 칭찬해 주고. 사실 생각은 이러하지만 실제로는 잘하지 못한다. 약간의 답답증을 느끼며 잔소리를 시작하고야 마는데. 이 서툶을 눈감아 주고 잘했던 경험을 계속 쌓아줘야 하는데.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물려줘야 하는데. 그만큼도 해내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다. 답답하거나 화날 때는 한 박자 쉬고 반응해야 하는데 내 마음도 밴댕이 소갈딱지만 하다. 아이가 유아면 엄마도 유아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엄마도 초등학생이 된다더니. 어른답지 못하게 똑같은 나이가 되어 같이 싸우고야 만다. 아직 초등학생만큼 밖에 못 자란 엄마라니.


 아이는 나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그대로 빼닮았다.

 

 나는 별생각 없이 살아왔던 행동이나 습관들을 아이를 통해 발견하게 되면 무척 찔린다. 내가 이런 거에 잔소리를 해도 되는 걸까. 양심이 콕콕콕. 잔소리가 아니라 칭찬을 해야지. 우리 아이들을 들썩들썩할 그런 마음을 담은 칭찬을. 그래서 아이가 어른이 된 어느 날,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래도 나 좀 괜찮은 사람이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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