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귀리를 접한 건 몇 년 전이었다.
귀리를 우유에 타먹으면 그렇게 살이 쏙쏙 빠진다는데? 그래서 하얀 우유와 쌩 귀리를 샀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산 귀리는 그냥 쌀같이 생곡식이었고 이걸 우유에 타먹는 건 고역이었다. 결국 얼마 안 먹고 말았지. 그리고 귀동냥, 눈동냥으로 귀리가 오트라는 걸 알게 되고, 오트밀을 아침에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식이섬유도 풍부해서 역시나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이야길 들었지. 그때 검색해서 샀던 건 퀵 오트밀. 이거 우유에 넣으면 금방 불고 먹기도 거부감이 없었다. 물론 약간 종이 불린 느낌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생귀리 먹었던 때보다는 훨씬 나았지. 근데 그것보단 롤드 오트밀이 좋다던데? 요즘 연속 혈당측정기나, 혈당 스파이크 등이 다이어트와 건강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퀵 오트밀이 몸에 안 좋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근데 롤드 오트밀도 사서 먹고 보니 이것도 생각 보다 칼로리도 높고 혈당도 갑자기 치솟게 한다고? 퀵 오트밀과 다르지 않다고? 그런데 또 검색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말도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나. 어쨌거나 먹기 쉬울수록 흡수도 잘 될 테니 우선 나는 혈당이 갑자기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믿기로 한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내가 혈당 측정기를 사다 붙여놓고 테스트하고 싶었지만 건강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실 확인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검색해 나온 결과들과 근거들과 말이 되는지 등으로 판단하고. 그다음에 알게 된 게 스틸컷 오트밀이라는 게 있더라고. 롤드 오트밀은 오트밀을 으깼지만 스틸컷은 칼로 싹둑 썰기 한 그런 느낌이라네? 아직 먹어 보진 못했지만 여기저기 검색 결과 논리를 짜집어 보면 분쇄가 덜 돼서 흡수가 더 느려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혈당도 천천히 오르겠지.
그래, 이 오트밀 하나도 검색 결과에 완전히 신뢰할 만한 무언가가 없다. 내가 검색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을 것이다. 뭐 하나에 꽂히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파고드는 편인데 이 인터넷 세상은 못 찾아봐서 그렇지 정보가 엄청난 반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끄적거림처럼 믿거나 말거나 뇌피셜로 도배가 된 내용도 많다. 오로지 자기가 정보의 참과 거짓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내가 다른 생각을 했다고 다른 결론을 내렸다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나의 일상과 나의 건강에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니 크게 중차대하지 않겠지만. 어디서 들었는데라며 정보를 퍼 날라도 그 정보에 신빙성을 찾을 수는 없다.
검색 결과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사실이 포함되지 않은 글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사실이 필요해서 검색했는데 찾아볼 때마다 나오는 내용이 다르다면? 식물의 이름 하나 검색하는데도 정확하게 나오는 게 없다.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저렇게 말하고. 거기서 내가 그냥 취사선택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만 이 녀석도 사실은 정확한 학명이 있을 텐데. 이름이 있을 텐데. 물론 식물은 유난히 유통명과 실제 이름, 부르는 이름들이 제각각인 편이긴 하다. 그런데도 그 와중에 내가 어떤 단어로 검색하느냐에 따라 검색 결과가 다르고 찾을 수 있는 정보가 다르다. 마지나타도 그냥 마지나타로만 줄창 검색했을 때 골드 럭키니 하는 이름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어딘가 사실이 숨겨져 있을 텐데. 꼭꼭 숨은 것도 아닌데 그저 내가 그걸 찾지 못하는 걸 수도.
예전에는 후기에 대해 약간 부정적이었다. 대부분 광고인 것도 같고 진짜라는 느낌도 안 들고. 좋은 말만 해야 할 것 같고. 궁금증에 대해 답을 구하고 나면 굳이 다시 적지도 않았다. 나만 알면 그만이지. 하지만 요즘엔 자꾸 알게 된 내용에 대해 적어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나중에 다시 기억하기 위함도 있지만 혹시 모를 집단 지성을 만들어 주기 위해. 검색을 했을 때 내가 원하는 대답이 없는 경우가 꽤나 많고 뒤적뒤적거리다가 찾게 된 모래알 같은 정보들. 그렇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복제해 주면 다음에는 좀 더 수월하게 검색되지 않을까.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은 검색하면 맨날 나온다. 하지만 진짜 궁금한 건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서 여러 번 검색하고 찾아야 눈에 띈다. 좀 더 많아지면 찾아보기가 더 좋겠지.
이제는 궁금한 게 생기면 우선 검색을 한다.
그게 당연하다. 요즘엔 챗 GTP가 나와서 궁금한 걸 AI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챗이 이야기해 주는 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럴듯한 내용을 긁어모아서 보여주는 것뿐. 내가 하는 단순한 검색들을 미친듯한 속도로 여러 번 반복하고 그중 가장 그럴듯한 내용을 내게 보내준다. 검색 단어만 조금 바꿔도 결과는 좀 더 유의미, 혹은 무의미하게 바뀌기 쉽다. 그렇게 AI가 내놓는 답변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나. 가짜 사실. 그럴듯한 가짜. 어쩌면 진실일 수도 있겠지. 내가 검색해서 나온 내용들보다 좀 더 사실에 가까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미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다. 세종대왕 맥북 사건처럼 누가 봐도 거짓인 내용이니까 우스갯소리로 지나갈 수 있겠지만, 잘 모르는 내용이라면? 잘 몰라서 검색했고 너무 그럴듯하다면. 보통은 답변에 꿈뻑 넘어갈 정도로 그럴듯하다. 아마도 AI가 내놓는 거짓 정보에 홀랑 넘어갈 테지. 그리고 그 정보들이 많이 양산되어 퍼진다면 사실인 양 굳어질 테지. 사실은 정말로 검증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AI에게 대체되지 않으려면 그 녀석이 내놓는 것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맞는지 틀리지는, 옳은지 그른지.
얼마 전에 김 값이 폭등한다는 내용을 접했다. 사실 나는 체감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비싸졌다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내가 자주 보는 유튜브에 내용이 올라왔고 그래서 영감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영감은 자기가 들은 내용이랑 다른다는 것이다. 영감은 그 내용을 기사와 뉴스로 접했다. 그런데 내가 들었던 내용과 김값이 오른 사실은 똑같았지만 원인은 전혀 다르게 지목됐다. 어떤 게 진짜일까. 어떤 게 사실일까. 물론 둘 다 사실일 수 있겠지만 두 내용을 다룬 각각의 매체는 다른 편의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둘 중 하나만 보고 있었다면 다른 건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유일한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런 건 사실 없는 걸까. 수많은 진실이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걸까.
위키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지만 가끔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만이 적혀있는 단 하나의 책. 내가 원하는 정보를 검색했을 때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 좋을까. 귀리는 이렇게 먹는 게 제일 좋아요. 이 식물의 이름은 그거예요. 아이와 가기 좋은 지역별 캠핑장 리스트. 이 정도 공부를 해야 하는지 휴식이 필요한지. 식물 영양제 성분은 뭐가 있어야, 어떤 배합이어야 좋은지. 우리 집 세면대 밑에서 물이 새는데 어쩌면 좋을지. 오래된 타일의 줄눈 시멘트가 삭아서 떨어지는데 놔둬도 되는지. 배당이 제일 잘 나오는 데는 어느 회사인지. 필라테스는 주 몇 회 가야 가장 효율이 좋은지. 유통기한이 3개월 이상이 지난 간장과 식초와 고추장과 된장은 먹어도 될지. 완벽한 여행 일정과 예산. 실내 자전거의 효과는 얼마나 있는지. 근육을 늘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운동이 뭔지. 갑자기 드래곤 라자 속 테페리 신이 생각난다. 사실이 적혀있는 책은 아니지만 갈림길의 질문에서 진실만을 이야기해 준다고 했던가. 선택을 도와줬던가. 그래 책이 아니라 Y or N만 대답해 줘도 되겠는데.
결국은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게 많아질수록, 오히려 내가 옳다는 어떤 고집이 생겨나고 있다. 생활의 아주 사소한 부분들에서도. 사실 내가 모르는 곳에 더 많은 것들이 숨어 있을 텐데.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까.
202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