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에게는 자유놀이를.
나는 아이들의 자유놀이 시간을 많이 주는 편이다. 물론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 내용이 많아지기 때문에 시간이 적어지지만, 탑-다운보다는 바텀-업 의사결정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들의 의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많이 확보해 주고, 내가 줄 수 있는 많은 권한을 아이들에게 위임한다. 2022년도에는 저학년을 맡았기 때문에 자유놀이 시간을 내 기준으로 많~이 주었다.
1년 동안 많이 관찰했으니,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를 브런치 보고서로 남겨보겠다.
- 아이들은 성향에 따라 놀고 싶은 것이 정말 다르다.
- 보통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1년 내내 지속한다.(가끔 다른 걸 하며 놀기도 하지만)
- 아이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유놀이를 하며 귀신같이 자신과 같은 유형을 알아채고, 놀이하는 동안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이 된다)
1. 행동파
1년 내내 동물 놀이, 포켓몬 놀이 등등 다양한 놀이를 '몸'으로 한다.
항상 효과음을 입으로 내면서...' 야옹~, 멍멍, 빠샤~, 퓽~'
2. 피카소파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1년 내내 그렇게 그린다. 학기 초에는 색칠공부를 그렇게 뽑아달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직접 그리면서 창작은 세계를 펼친다.
3. 발명파
만들기를 하는 아이들은 만드는 것이 달라질 뿐 계속 꼼지락댄다. A4용지를 쌓아두면 생각도 못한 것들을 (호텔, 가게, 총 등등) 어떻게든 만들어낸다. 가위, 풀, 꼼지락 반복.... 올해 아이들은 개인적으로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 성향의 아이들이 이렇게 놀았다. 처음엔 단순하게 만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뭘 누르면 뭐가 튀어나오고, 뭘 열면 그 안에서 뭘 꺼낼 수 있는 등 점점 정교하게 만들었다.
4. 연기파
역할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직종이 바뀔 뿐 계속 누군가가 되어 진심으로 연기를 한다.
교실은 순식간에 회사, 연예 기획사, 미용실, 네일샵이 된다. 이 아이들은 쿵짝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가만히 냅두면 고학년까지도 연기를 한다.
5. 학구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읽는다. 다음 시간 교과서를 펴는 순간까지 읽는다. 가장 반응이 늦다. 선생님이 애타게 불러도 못 듣는 경우가 많다(책 속의 세계에 계시기 때문에).
여기에서 아이들의 하나의 성향만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융합, 발전한다. 예를 들면 만들기 파와 연기파가 섞이면 아이들이 있으면 네일샵에 필요한 메뉴판을 만들고, 그림 그리는 아이들과 섞이면 네일 디자인을 기가 막히게 한다. 행동파 아이들은 연기파 아이들 가게의 단골손님인 동시에 학구파 아이들 옆에 낑겨 앉아서 같이 책도 읽는다.
물론, 교사의 역할은 방치가 아니다.
교사는 소외되는 아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해결해 줘야한다. 난 항상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지 체크한다.
또, 놀잇감을 다양하게 수시로 바꿔 제공해줘야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같이 해결해나간다.
그런데 여기서 더 끼어들면 아이들은 자꾸 가라고 한다(내가 귀찮은가보다..ㅠㅠ). 그리고 자꾸.. 모자라단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아이들 입장에서. '왜 모자라다고 할까?'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일같이 아침 일찍 학교를 와서
선생님이 정한 시간표에 따라 궁딩이도 못 떼고 지식을 배우며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부모님이 정해놓은 스케줄을 빈틈없이 돌아야 한다.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사이사이 10분의 쉬는 시간, 학원 가기 전 슬라임 먹는 시간 뿐.
그래서 아이들은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뭐 이런 밈을 유행시켰나 보다.
물론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생각하면 성취기준의 도달이라는 점이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교실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혹은 혼자 자기가 원하는 일을 마음 편하게 하는 시간은 분명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사실 집에서 친구들 없이 혼자 뭔가를 하는 것보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똑같은 것을 해도 훨씬 재밌다. 그리고 여럿이서 일을 꾸미면서 나오는 시너지는 아까 말했듯이 놀랍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지니고 태어난다. 그리고 다양하게 가지고 태어난다. 너도 나도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데 수업 시간에 똑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섭섭하기도 한데 내가 수업할 때와 놀 때 아이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마치 죽어가는 화분에 비싼 영양제를 꽂은 것처럼 살아난다. 난 내가 멋드러지게 준비한 수업을 끝까지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몰입하여 무언가를 하는 게 좋다. 물론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 전체에게 정신없이 몰입을 시키고 싶지만 아직 그런 노련함까지는 갖추지 못했다.
어쨌거나 2025년부터 저학년 교육과정에는 놀이 시간이 더 많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환영이다.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더 행복하게 자라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