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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5. 2021

진작 받았을 것이다.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미련


상처받은 내면아이?

그게 뭔가 싶었다.


‘부모가 인정하지 않아 

나도 인정할 수 없기에 

무의식에 그림자로 남아 있는 욕구와 감정’


내 부모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우리 엄마가 우리 삼남매를 위해 얼마나 밤낮없이 일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나는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살았음에도

그것이 전부 못난 나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욕심많은 나의 문제. 철이 없는 나의 문제.


아빠가 밉고, 일하러 간 엄마가 없는 집이

너무 무섭고 외로웠지만,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나만 가지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억울하고 이상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였기에

당연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기란 쉽지가 않았다.


나는 막연히 ‘사랑’ 받았다고 믿어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막연히 사랑받았다’라는 감정은

오랜시간 나를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가두어 두었다.


해묵은 감정을 털고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 나아가려해도

늘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늘 내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였다.

분명히 사랑받았다 여겼지만, 

마음 한켠 재쳐둔 진실은 늘 내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부모도 몰라서 주지못하는 사랑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끝끝에 인정하지 못하고 놓어버리고 싶지 않은 나도 있다.

나를 아프고 아프고 아프게 하는 기억일지라도 

그것이 나를 만들었다고 믿고 싶은 내가 있을 뿐이다.


미련으로라도 잡아두고 싶은 사랑.

나를 아프게 해서라도 받고 싶은 사랑.

내 아이를 나와 똑같이 아프게 하더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


그것이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지키고자 하는 사랑이다.

영원히 받을 수 없는 사랑이다.

주려했으면 진작 주었을 것이고,

받을 수 있었다면 진작 받았을 그런 사랑이다.


미련처럼 붙잡고 있는 그 사랑을 우리는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충분히 만족스럽게 크지 못했던 그 과거로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이미 컸고

내 부모는 너무 늙었기에.

아픈 내 어린시절로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당신은 나이는 지금 몇살인가요?


몸만 큰 어른들, 부모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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