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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불가능성의 비대칭에 대하여

by 신성규

나는 의문이다.

어떻게 범인(凡人)들이 천재를 평가할 수 있는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석조차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사람은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만 추론한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사고의 높이와 깊이 안에서만

타인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타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오해 혹은 경계의 대상이 된다.


천재들은 범인의 언어와 행동이

낯설고 서툴게 보일 수 있지만,

그 근거와 배경은 이해한다.

그들은 더 아래에 있는 구조를 보았고,

그것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도 해석해낼 수 있다.


그러나 범인은

천재가 어떻게 그런 생각에 도달했는지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중간 단계가 없다.

그저

“왜 저런 말을 하지?”

“지금 뭐라는 거지?”

“이건 너무 복잡하다.”

하는 반응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차이다.

한쪽은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한쪽은 해석되지 않는다.


아이와 어른의 관계도 이와 같다.

어른은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아이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아직 그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른을 이해한다면,

그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범인이 천재를 이해한다면,

그는 더 이상 범인이 아니다.


이 사유는 단지 우월감의 표현이 아니다.

이는 인지 격차가 만들어내는 존재적 단절에 대한

고요한 비판이자,

고독한 해석자로서의 천재의 운명에 대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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