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운영체제다

by 신성규

한때 나는 그렇게 믿었다.

기계 번역이 발전하면 영어의 중요성은 점점 사라질 거라고.

언어의 장벽은 기술이 무너뜨릴 것이고,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써도

세계 어디서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될 거라고.


그 믿음은 아름다웠지만, 지금 나는 그 반대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기계 번역은 분명히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번역의 정밀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어를 모르면 나는 여전히 세계의 본문에 도달하지 못한 채

요약문만 훑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번역은 정보를 옮길 수는 있어도,

사고의 구조, 문화의 맥락, 은유의 숨결까지 옮기지는 못한다.

한 편의 시가 번역되면 시가 아니라 정보가 되고,

한 명의 철학자가 영어로 사유한 문장은

모국어로 옮겨질 때 철학이라기보다 교훈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자주 느낀다.

진짜 중요한 정보는, 최신 기술과 자본의 움직임은,

세계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개념과 실험은

영어로 먼저 말해진다는 것을.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새로운 질병의 백신이 발견되었고,

어느 스타트업이 AI로 사회를 바꾸려 하고 있으며,

어떤 젊은이가 유엔에서 평화를 외치고 있다.

그 모든 말과 문서, 회의와 생각의 언어는 영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나는 번역된 문장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원문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장의 구조 너머에 있는 의도, 감정, 분위기까지 이해하는 사람.

그래야만, 이 세계를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발언하는 자로 살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계 번역의 시대에

영어는 더 중요해졌다.

기계는 번역할 수 있지만,

문화를 번역하지 못하고, 유머를 옮기지 못하며, 통합의 온도를 담아내지 못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깊은 감각과 맥락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영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이 세계의 운영체제라고.


이 운영체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당신은 언제까지나

번역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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