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악마의 존재를, 어둠의 뿌리를 인정하는 일이다.
신이 있다면, 악미도 있다는 건 이 세계를 직면하는 가장 본질적인 통찰이다.
이 진실은 무서우면서도 명징하다.
나는 가끔 깊은 내면 속으로 빠져든다.
생각이 너무 침전될 때, 잔인한 상상이 스치곤 한다.
그건 내가 잔혹해서가 아니다.
그건 ‘틈’이다.
우리의 정신이 무방비할 때 생기는 금간 틈.
그곳으로 어둠이 밀려온다.
악마는 늘 그 틈을 노린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다듬고 닦는다.
예민한 감각을 방치하면, 그것은 칼날이 된다.
밖을 찌르거나, 나를 찌르거나.
예술을 하는 자들이 왜 고통 속에 살았는지,
조선의 왕들이 왜 그렇게도 예술적이면서도 잔혹했는지 이해가 간다.
예민한 자는 느낀다.
공기의 진동, 사람의 표정, 죽음의 냄새, 감정의 색깔.
그러나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파멸한다.
연쇄살인범들이 왜 그림을 잘 그리고,
학살자들이 예술에 심취했는지 —
그건 감각의 양면성이다.
신에게 가 닿을 수도 있고, 악에게도 지배될 수도 있는.
그러니 우리는 틈을 다스려야 한다.
갈고 닦아야 한다.
예민한 촉수는 섬세한 손길로 다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아닌 누군가의 손에 들린 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