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노숙을 하러 나간다.
이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실험이자 수행이다.
바닥의 냉기, 벤치의 딱딱함,
자동차 소음과 바람의 울림까지,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밤이 있다.
나는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
말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것을.
생존과 가까운 감각,
몸이 곧 ‘존재’가 되는 시간.
따뜻한 이불 속이 아닌,
세상의 맨살 위에 나를 던지고
진짜로 살아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따라붙는 감정이 있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
나는 결국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이고,
언제든 이 실험을 끝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건 고통의 흉내, 불편함의 연극일 뿐 아닐까.
그 순간, 나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느낀다.
가짜 고행, 자의적 고통, 낭만적인 체험주의자.
진짜 거리의 사람들은 나처럼 돌아갈 곳이 없다.
그들에게 감각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나는 그 세계를 감히 체험하고 싶다고 나섰다가
무언가 본질적인 윤리 앞에서 머뭇거린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느끼고 싶었던 것은, ‘타인의 삶’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의 감각’이었다.
무뎌진 현실, 고요한 절망,
형광등 아래 위로만 소비하는 감정들 속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진짜 촉감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도는
비록 바보 같고 불완전했을지언정,
나를 다시 살게 했다.
나는 오늘도 들어갈 집이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내 감각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는 더 겸손해지고
내 삶의 배경을, 나의 특권을,
그리고 느낀다는 것의 윤리를 묻는다.
나는 완전한 진실을 살지 못한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나를 거리로, 바닥으로, 감각의 언저리로 이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직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