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이상한 장면을 본다.
나라를 위한 협상, 미래를 위한 선택, 국익을 위한 유연함.
그럴싸한 말들이 반복될 때,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건 정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1905년, 나라의 운명은 몇몇 위정자들의 책상 위에서 오갔다.
그들은 말했다.
“지금 힘이 없으니, 더 큰 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전쟁은 피해야 한다. 백성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명분은 국권의 상실로 이어졌다.
2025년, 미국과의 통상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은 다시 한 번 ‘국익’을 명분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모든 건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대의 속에서 정당화된다.
나는 이것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과거엔 일제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고, 지금은 미국이라는 동맹 속 우위가 있다.
그들은 힘을 행사하고, 우리는 논리로 설득당한다.
그러나 그 논리에는 묘하게 굴복의 향이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미래를 말하며 현재를 포기하고 있다.
그것은 포기인가, 전략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착각인가?
과거의 매국은 칼을 들이댄 강요의 결과였지만,
지금의 매국은 펜으로 서명된 설득의 결과다.
형태가 다를 뿐, 구조는 다르지 않다.
무력함과 체념, 대의와 명분, 그리고 결과의 돌이킬 수 없음.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굴복은 ‘그럴싸한 명분’과 함께 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묻는다.
“그때 왜 아무도 막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