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개념의 문학 실험

by 신성규

내 글은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사건을 따라가며 설명하는 3인칭은 안정적이었고, 그 안정은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왜 이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목구멍에 걸렸다.


소설은 이야기인가? 아니면 이야기를 보는 방식인가?

나는 후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작가라는 존재는 일관된 세계관 속에서 호흡한다.

등장인물의 고통을 예측하고, 플롯을 조정하고, 세계의 윤곽을 확정짓는다.

그러나 나는 그 일관성이 불편했다.

한 사람의 시선이 만들어낸 세계는 너무나 단단했고, 그 단단함이 생기를 죽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자를,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자가 있다면 어떨까?

3인칭으로 서술된 세계를, 외부에서 감지하고 해석하는 또 하나의 존재.

나는 그것을 ‘4인칭 시점’이라 부르기로 했다.


간단하게 구조를 풀면 다음과 같다.

서술자 A가 어떤 이야기를 구성.

서술자 B가 그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며 글 속에 개입.

서술자 C는 A와 B를 감지하는 또 다른 인식자의 입장에서 독자에게 말함.


이것은 단순한 메타픽션이 아니다.

이는 서사 구조 자체에 끼어들어 그 틀을 흔들고,

작가의 신을 의심하며, ‘의식의 틈’을 드러내는 실험이다.


독자는 줄곧 인물에 몰입하며 사건을 따라간다.

그러나 나는 독자가 갑자기 멈추기를 바란다.

“이 이야기를 말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는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그조차도 누군가의 설정일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이야기를 끝없이 미끄러뜨리는 장치다.

하지만 그 미끄러짐 속에서 새로운 감각, 새로운 창의가 깨어난다.


나는 이 구조를 혼자 만들 수 없다.

내 일관된 작가적 뇌 구조를 분해하려면 타인의 세계관이 필요하다.

공동 창작, 그리고 그들 사이의 충돌.

나는 여기서야말로 진짜 서사의 분열과 재조립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정적인 주인공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그 주인공을 도발하고,

마지막 누군가는 전체 서사를 조롱하며 전혀 다른 시점을 덧씌운다.


마치 서술자 간의 장기전, 혹은 내러티브 체스처럼.


나는 더 이상 사건만을 쓰고 싶지 않다.

‘사건이 어떻게 읽히는가’를 쓰고 싶다.

읽는 이의 인식, 쓰는 이의 무의식, 관찰자의 이중성, 그 모든 것들이 맞물린 이야기.

그것은 일종의 서사에 대한 서사, 혹은 소설을 의심하는 소설이다.


언젠가 독자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지금 누구의 의식 속에 있는가?”라고 혼란스러워하길 바란다.

그때 비로소, 나는 시점의 혁명을 이룬 것이다.

내가 제시하는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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