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16화

예술가와 사회적 명령에 대한 무게

by 신성규

나는 예술을 좋아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숨 쉬는 가장 진한 순간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결국 공감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내던져

타인의 마음과 연결하는 것.


하지만 그 공감의 능력은 이상하리만큼

여성에게서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돌보고, 친구의 상처를 보듬고,

남의 고통에 내가 아픈 것처럼 울어주는 힘.

그건 여성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초월적인 예술가는 대부분 남자였을까.

역사책을 펼치면 이름을 남긴 화가도, 작곡가도, 작가도

대부분 남자였다.

어쩌면 분석적이고 구조적인 사고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그걸로 예술을 언어화하고 체계화해야 했기에,

사회가 남자에게 그 언어를 더 쉽게 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들은 공감 능력이 타고났지만,

그 공감을 예술로 건축할 수 있는 ‘분석의 언어’를 얻기까지

너무나 많은 장벽을 마주했다.

그들의 공감은 종종 사회적 역할 속에서 소진되었고,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라’는 명령으로 환원되곤 했다.

그 결과 그들의 공감 능력은 예술로 승화되기보다는

현실적 관계와 감정 노동 속에 갇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본다.

남성 예술가들조차 그 길에서 좌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예술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지만,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들의 천재성은 현실의 무게에 눌려 꺼져갔다.

그들의 예술은 생계의 무게 앞에서 멈춰섰다.

여성들이 가사노동과 돌봄의 짐에 짓눌려 예술의 문턱에서 탈락하듯,

남성들 또한 ‘책임’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여

예술가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가끔은 그 책임이 예술을 짓누르는 족쇄처럼 보였다.

마치 여자들이 가족의 돌봄과 사회적 시선에 짓눌려

예술의 문턱에서 멈춰선 것처럼.


예술은 분명 공감이다.

그걸 표현하는 데 남자든 여자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누구나 ‘현실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그 무게가 누구에겐 가족이었고,

누구에겐 생계였고,

누구에겐 사회적 시선이었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몰입이 깨지고,

공감이 꺼지고,

예술가가 멈춰버리는 순간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팔로워 141
이전 15화깨달음의 여러가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