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고찰

by 신성규

우리는 살아가며 사랑을 갈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낭만적인 사랑이나 연인의 관계를 넘어, 우리의 삶 전체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열망이다. 그러나 이 사랑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사랑을 쉽게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끝없이 사랑을 의심하며 방황한다. 나는 그 갈림길이 ‘무조건적 사랑’을 경험했는가, 아니면 ‘조건적 사랑’에 길들여졌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안다’. 그에게 사랑은 처음부터 조건 없는 수용이었고, 그저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진 경험이었다. 그는 타인에게도 그 사랑을 베풀 수 있고, 자신을 믿으며 타인의 존재도 신뢰할 수 있다. 사랑을 주는 것이 두렵지 않고, 사랑을 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는 사랑을 의심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줄 안다. 그래서 그는 사랑에 쉽게 다가간다.


반면 조건적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 그는 늘 시험에 들었고, 사랑은 언제나 무언가의 대가였다. “착한 아이여야 사랑받는다”, “성공해야 인정받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사랑받는다”—그에게 사랑은 조건부였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때에도 늘 계산이 섞인다. 상대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내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그렇게 그는 사랑을 주면서도 동시에 방어하고, 받으면서도 의심한다. 그는 사랑을 배우지 못했기에 사랑이 늘 어렵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조건적 사랑 속에서도 무조건적 사랑을 꿈꾼다. 조건적 사랑에 길들여진 사람조차도, 깊은 곳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의 마음은 늘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길’ 갈망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은 조건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유롭고 싶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조건적 사랑을 넘어서려 애쓴다.


나는 인간의 잠재력이 가장 강렬하게 깨어나는 순간이 바로 ‘무조건적 사랑’을 경험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조건적 사랑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승인하는 행위다. 그것은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나는 이 세상에 있어도 되는구나’라는 깊은 안정감과 동시에 ‘내가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도 사랑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을 얻는다. 그 믿음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더 나아가 그 잠재력을 꽃피우게 한다.


조건적 사랑에 길들여진 사람은 그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그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사랑받으려 애써야 하는가?’ ‘나는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도 무조건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질문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놓여 있던 조건의 족쇄를 깨뜨리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을 배운다. 때로는 혼자서도, 때로는 누군가의 온전한 수용을 통해서도.


결국 인간은 조건적 사랑을 넘어 무조건적 사랑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우리가 사랑을 배우는 이유도, 사랑을 주려는 이유도 모두 ‘조건 없이 사랑받고 싶다’는 그 근본적 열망에서 비롯된다. 그 열망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