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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정원 Mar 13. 2024

뒤척임이 가능해진 밤의 경건함



사랑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손들

눈멀 듯 쏟아지는 하얀 포말의 손들

없는 사랑을 어떻게 준답니까

심장이 뒷걸음질 쳤다


결의하시오! 빗금으로 찌르는 목소리

할 수 없습니다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없어 결의할 수 없던 밤들


허리물소는 아직 다리를 절뚝거렸다

호수는 말라가고 나는 목이 말라 계속

목이 마르다고 물을 달라고 물을 퍼부어달라고 소리쳤다


결의하시오! 또다시 빗금 치는 목소리를

수신 거부한 밤 벼락처럼 내리친 빗금

허리물소의 몸이 반으로 갈렸다

숨만 붙어 반신불수로 나뉜 몸


근원의 샘물을 기억해내시오

빛의 강을 기억해내시오

이 영혼의 뿌리가 담겨 있던 곳을 기억해내시오


어느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들이

육신의 틈에서 철철 흘러나왔다


모든 것이 잠긴 뒤

출렁이는 손들로 뒤척임이 가능해진 밤


기억상실자는 기억상실을 떠올리고

깊숙이 잊고 있던 지층의 빛을

암반 밑으로 흐르는 대해大海의 빛을

아득한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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