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권태로웠다. 뭐 지금도 그런 흐름이 계속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다 빠리(그냥 이렇게 쓰는게 더 빠리 같아서)를 가게 되었다. 혼자서 여행 가방 작은 것과 배낭과 작은 손가방을 들고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나는 빠리에 그냥 있기로 했다. 2주간의 여행에서 하루만을 다른 곳에 두기로 하고 그냥 빠리에 있었다.
우선 루브르를 제대로 보고 싶었고, 그 외 빠리에 있는 몇몇 미술관들을 오랜시간 있고 싶었다.
그냥 멍하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좋겠다.
순서 없는 글을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네이버에서 안젤름 키퍼를 치면 지식백과가 501 위대한 화가라는 이름으로 그의 이력을 소개한다. 독일 출생의 설치미술가 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 미술 운동의 주요인물 ..뭐 그게 뭐든.. 내가 주목한 것은 커다란 박제화된 잠수함과 전쟁의 흔적들이었다.
첫 번째 사진 [퐁피두센터에 전시된 박제화 된 잠수함]
거대한 수족관 같은 것에 많은 잠수함들이 걸려있다. 박제화 된 것인지 아니면 회집 활어들처럼 잡혀와 있는 것인지 의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바닷속 정확히는 전쟁하는 바닷속을 재현하여 잠수함들이 걸려 있다. 물론 이 잠수함들은 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잠수함일 것이라 추정된다.
사진에는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큰 전시실 한 공간을 다 체우는 상당히 큰 설치 작품이다. 잠수함도 상당히 크다. 물론, 실물보다야 당연 작지만...
2차 대전 당시 잠수함은 많은 전쟁 과제를 수행한 것으로 알 고 있다.
전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일부를 작가는 작품으로 표상화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전쟁이지만 작가는 계속적으로 표상화하고 재현하고 표식 화해서 사람들에게 전쟁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사진 [퐁피두 센터 벽에 걸린 작품]
잠수함이 철망에 걸려 있는 설치작품이 있다. 회화라 할 수 있지만 연속성이 있기에 설치 같은 느낌이 컸다. 독일 예술가인 그는 계속해서 전쟁을 말하며 상기시키고 그것을 통해 그는 네이버에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있다.
물론, 그가 꼭 전쟁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사회적 통념에서 금지된 수많은 것들에 대해 환기하고 재현하며 재구성하는 작업에 열중한다.
나의 이번 빠리 여행에는 몇 가지 관심사가 있었다. 물론 이것은 그 대상에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스리 가장 나의 여행에 생각을 골몰하게 한 것은 그의 잠수함과 전쟁이었다. 내가 간 그날 몇몇 사람들이 그의 잠수함에 모여 여러 가지 토론을 하며 전쟁과 그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을 독일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며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한국전쟁은 어떻게 되었는가?
왜 2차 대전을 만들지도 않은 나라는 분단이 되었고, 왜 우리의 예술에는 아니 정확히 남한의 예술에는 한국전쟁에 대한 성찰이 없을까... 누구는 자신들의 과오를 지속적으로 말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우리는 우리의 어쩌면 상당히 억울한 전쟁의 결과표를 받은 한국전쟁을 이렇다 하게 말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이 작가는 일본예술연맹 제국최고상이라는 것을 받기도 했다. 그 상의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지만... 전범 일본은 상을 주고 전쟁에 대한 어떤 표현을 하는데... 전쟁의 피해자인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기껏해야 피해자 일본을 두둔하는 사람들을 권력자로 만드는 일에나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의 전쟁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 시작은 2차 대전의 많이 잘못된 결과물인 것인데... 개인적으로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는 그들의 모든 악행을 무마해주는 선물이 되어 한국을 망쳐버렸다. 물론 원폭 피해를 통해 많은 민간인 희생이 있었고 그 끔직함은 지금도 지속중이다. 다만, 우리의 피해는 이 보다 더 컷으며 잔인함과 끔직함을 넘어 참담함은 지금도 지속 중이다. 또한 이 나라의 갈등을 지속 시키고 있는 원인이 되어 있다. 망할 것이..우리가 피해자 인데 이런 사족을 항상 써야 한다.
우리는 전쟁을 통해 많은 사망자를 내고 피해를 입으며 수많은 고통을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경제라는 사슬을 감은체 망각되었다. 특히, 그 많은 예술가들은 어디에도 주목되지 못했다. 일본 예술은 근대와 함께 전후 세계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며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 매김 했다. 특히, 전쟁은 많은 일본 예술인들에게 각성을 하게 했지만, 일본 정부의 희생에 대한 담론 강화에 주목되면서 전 세계에 희생자 혹은 피해자로서 각인되는데 더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원폭의 희생자였다. 특히 민간인 부분을 통해서 말이다.
한국은..
빠리여행이 무슨 전쟁에 대한 잡다함을 가지러 간 것은 아니다. 설마 내가 이런 것에 생각을 기울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만 이번 빠리여행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잠기게 했던 것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대한 여러 생각들...
왜 우리가 분단이 되어야 했을까.... 와
왜 일본은 피해자일까..
왜 한국은 일본....
하...
아마도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않는 것으로 우리는 살아온 것 같다. 우리의 전후세대는 진실보다는 먹고사는 문제였고, 우리의 한심한 대통령 혹은 다수의 지도자들은 그깟 것들보다는 거지 같은 삶을 극복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가난이 더 두려운 당면과제였고, 거지 같은 지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부모의 심장에 총을 쏜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산다.
그래서 우리는 내 어머니를 발가벗긴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산다.
그래서 우리는 내 형제를 서로 죽이게 한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산다.
여전히....
여행 소감을 이런 것으로 시작하며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첫 번째 빠리여행일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