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에다가 연중무휴인 심리상담사

엄청 효율성 높은 나의 심리상담사

by 선샤인 연주리

내가 아이들하고 있을 때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고 하면 사람들이 ‘거짓말’이라고 한다.

친한 친구들은 나한테 "개 뻥치시네"라고 속시원히 표현한다. 그런데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퇴근하는 시간이 엄청 기다려진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거나 고민이 생기면 남편한테 전화해서 공유하고 집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말을 하면서 푼다. 아이들은 상사 욕도, 프로젝터 리더 욕도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나의 욕심, 욕망도 잘 들어주기 때문에 아이들하고 있으면 스트레스 지수가 제로다. 상사 욕을 회사에서 하면 내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되어버리고, 내가 일 잘 못해서 끙끙대고 있는 것을 옆에 동료와 나누면 순간 스트레스는 풀릴지 모르지만 나는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회사 일이 어렵다, 힘들다, 이러이러한 게 잘 안된다고 하소연을 해도 그냥 편견 없이 들어준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무능하게 생각하거나 나를 욕쟁이 할머니로 보지 않는다. 이렇게 순수하게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이가 있다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심리상담이나 정신과를 가려고 하면 일단 비용 앞에서 머뭇거려지는데, 아이들은 돈도 안 낸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때에 예약도 없이 수시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 나는 두 아기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지쳐있었는데 둘째가 밤에 한 시간에도 두세 번씩 깨는 바람에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내가 잠이 든 시간은 있긴 있는 건지 비몽사몽 한 상태로 몇 개월을 보냈다. 아프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서 의사를 보고 “얘 가요 아픈 건 아닌데, 밤에 통잠은커녕 한 시간에 두세 번씩 깨요. 어디 속이 아픈 게 아닐까요?”라며 진찰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수면클리닉은 다 어른 대상이던데 아기 수면클리닉은 없냐"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사는 허허 웃으며 아이는 아주 건강하다고 힘내시라면서 나를 돌려보냈다. 그래서 내가 찾아간 곳이 바로 심리상담실. 나의 힘든 하루하루를 그냥 털어놓는 것만으로 치유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심리상담 한 번 받는 게 왜 그리 어려운지. 예약을 해야 하는 데 원장님은 너무 비싸고 또 내가 원하는 시간에는 이미 예약이 다 차있었다. 예약이 텅텅 빈 상담사를 가리키며 여기서 해보라고 안내를 하는데, 나의 이 힘듦을 어쭙잖은 상담경력이 별로 없는 사회초년생에게 맡기기는 싫었다. 그래서 결국 부원장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2주 뒤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담하기 전에 작성하라며 준 질문지에는 대답해야 하는 항목이 왜 그리 많은지... 지금 당장 털어놓고 싶은데 2주라는 긴 시간을 나는 그 힘겨운 마음을 꽁꽁 마음속에 싸맨 채 답답한 심정으로 질문지를 낑낑 작성했다.




2주 뒤, 예약한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갔는데, 부원장은 프로여서인지 시간을 딱 맞춰서 들어왔다.

상담사답게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잠은 잘 자는 것 밖에 해결책이 없는 문제여서 시원한 대답은 못 들었지만 내 이야기를 심도 있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줄어듬을 느꼈다. 친구에게는 할 수 없는 깊은 마음속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무언가 마음이 시원해지려는 데!!! 상담시간이 다 되었다며 부원장은 다음에 또 뵈어요 하고 아주 쿨하게 나가버렸다. 그리고 안내하는 사람이 달력을 가지고 들어오더니 다음 상담 날짜를 잡자고 하였다.


‘아... 돈 내고하는 상담은 중간에 이렇게 끊기는구나... ’

마음 응어리가 풀어지려는 듯 말랑말랑해지고 있었는데, 담당 상담사는 자리를 뜨고, 안내원의 달력만 내 눈앞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모습에 왠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 달력을 던져버리고 상담실 문을 소리 나게 쾅 닫으면서 뛰쳐나오고 싶었다. 나의 고민이 이 사람들에게는 돈이구나. 진정 나를 위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 무언가 씁쓸한 마음이 들어 다음 상담 날짜는 전화로 말씀드리겠다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상담의 필요성과 효과를 느낌과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도 돈이 드는 요즘 세상의 차가움을 느끼며 씁쓸하게 집으로 돌아온 그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우리 아들 딸은 나한테 예약을 요구하지도 않지, 돈을 달라고도 안 하지, 상담 불가능한 날짜도 없고 심지어 주말, 공휴일은 더 상담이 잘되니 내가 자주 애용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될 때에는 애원을 해야 하긴 하지만 아이를 꼭 10초 안을 수 있는 찬스까지 있으니 전문상담사보다 열 배 아니 백배는 고효율이다. 내가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가 안 된 것을 확인한 날의 대화다.

"엄마가 오늘 개인적으로 도전한 일이 있는데, 결과가 나왔는데 안됐어... 너무 마음이 슬픈데 엄마 좀 안아주면 안 될까?" 이렇게 진지하게 슬픈 눈빛으로 말했더니, 아이는 내 마음이 전달이 되었는지, 평소와 달리 쪼르르 달려와서 나를 오래도록 안아주었다. 따뜻하고 조그맣고 포동포동한 살을 만지면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버리는 그 느낌은... 아이를 꽈악 안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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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 정도는 된 것 같지만, 4살 6살의 꼬마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니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속내를 아이들에게 잘 털어놓는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단 이야기도, 동료직원이 마음 아프게 말한 것도, 점심이 진짜 비쌌는데 양은 코딱지 만해서 밥 먹고 나오자마자 2차로 빅사이즈 핫도그에 케첩을 잔뜩 뿌려서 먹었단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나눈다. 어제는 회사 본부장님 와이프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픔에 잠겨 집에 와서 울먹거리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아니 모든 직원이 좋아하는 본부장님이 계신데, 사모님이 그러니까 아내분이 유방암을 오래 앓다가 어제 하늘나라로 가셨대. 아직 환갑도 안되셨는데, 오래 앓다가 돌아가셨대. 마음이 너무 아파. 본부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을까? 엄마는 아빠가 만약에라도 하늘나라 가면 슬퍼서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엄마, 엄마가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엄마도 울어요 슬프면. 그런데 아빠는 엄청 건강하잖아요. 아빤 안 죽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너무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위로의 말과 웃긴 말을 동시에 하다니 하하하하 정말 타고난 상담사다. 그래서 원래 눈물이 많은 나는 아들의 말을 듣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다 같이 잠시 본부장님과 돌아가신 아내분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아이의 요구를 시시때때로 들어줘야 하는 귀찮음, 빨래 설거지처럼 하기 싫은 일의 양 증가 등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나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나의 작은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의 풍요로움,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조금 귀찮고 불편해도 마음이 더 평온하고 행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너희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더 행복하고 더 마음이 편안하다.

나의 연중무휴 항시 대기조 상담사들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