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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May 15. 2020

아줌마가 되어 간다는 것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불어난 사이즈도 함께


신발사이즈 235. 옷 사이즈 55. 

이 숫자는 나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10년 전까지는. 

인생전체를 통틀어 고작 5년 동안.



나는 마치 이 사이즈가 내 몸의 기준이고, 나는 원래 이 사이즈였고, 이 사이즈여야지 내가 예쁘고 젊어질 수 있다는 미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끄럽지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결혼을 할 즈음부터 그러니까 내가 살이 찐 것은 아이 출산 때문이 절대 아니다. 

아이를 낳고서는 너무 힘들어서 살이 쪼옥 빠져서 한 때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었으니 내 살은 아이 출산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앞두고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살이 점점 찌면서 내 발 사이즈는 240, 옷사이즈는 66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서 발이 부은 줄 알았는데 아니다. 발에도 살이 쪄서 발이 커진거다. 팔뚝은 아이를 안고 엎고 다니느라 근육이 생겨서 두꺼워 진 줄 알았는데 아니다. 살이 쪄서 55를 입으면 팔뚝이 꽉 끼는 거였다. 이것을 인정하는 데에 무려 3-4년이 걸렸다. 밤에 자기 직전에 라면 한봉지를 끓여먹고 다음날 일어나도 얼굴이 전혀 붓지 않는 게 나라는 걸 알면서도, 발과 팔뚝은 아이 키우느라 힘들어서 부은 것이기를 간절히 바랬던 모순적인 나의 모습이 내가 봐도 우습다.


몸무게는 6키로가 불었는데 발 사이즈는 계속 235에 머물러 있기를 바랬던 바보 같은 나. 아마도 내 발이 235라는 예쁜 사이즈가 아니면 아가씨 느낌에서 아줌마 느낌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서. 55를 입지 않으면 예쁜 여자가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라도 조금이라도 더 아가씨 느낌이 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어렵게 오랜 세월을 거쳐 240과 66을 인정했는데


사진출처 https://www.stylecraze.com/articles 


맙소사 이제 240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라기 보다 이렇게 된 지도 어언 1-2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사실부터 말하자면 한 단계 더 살이 찐 거다. 내 생활 습관이 지금과 동일하게 유지된다면 평생 살이 조금씩 찌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예전에는 한끼 굶으면 배가 쏘옥 들어가서 아가씨 때 입던 바지를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때에 잠시나마 억지로라도 입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한끼를 굶어도 그 바지에 다리통이 도무지 들어가지를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연한 눈내 몸이 직접 겪은 사실인데도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화딱지가 난 나는 괜한 ‘미니멀라이프’라는 이름 하에 아가씨 때 입던 고가의 브랜드 원피스와 정장바지를 모조리 버렸다. 내 짐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내 눈앞에서 55사이즈의 옷들이 전부 사라졌다. 그러니까 몇 년 전만해도 살을 조금 빼면 다시 입을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미니멀라이프를 앞세우며 나는 다시 “내가 이만큼 살이쪘구나.”라는 안좋은 기분을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들을 다 없애버렸다.


그런데 남편과 등산을 할 때마다 불편함이 또다시 스물스물 올라왔다. 한 개밖에 없는 사이즈 240의 운동화. 이 운동화를 신고 등산을 하는 데 내가 그 운동화를 늘 접어 신고 다닌 게 화근이었다. 남편은 왜 운동화를 접어신냐고 보기도 흉하고 등산하다 미끄러지면 어떻게 하냐며 운동화를 똑바로 신으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말하다가 나중에는 부탁을 하다가 끝끝내는 성을 냈다. 그런데 사실부터 말하자면 운동화가 내 발에 너무 작았기 때문에 똑바로 신으면 발이 조여와서 발에서 혈액순환이 멈추어버릴 것 만 같았다. 똑바로 신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남편이 신발이 작아서 그러냐고 그럼 큰걸 사서 제대로 신으라고 큰소리 치는 데. 마음 속 어딘가에서 늘 아가씨 같은 여자이고 싶은 나의 자존심은 이렇게 답했다.

“작은 게 아니야! 나는 답답한 게 싫어서 그래. 그냥 구겨신으면 어때!”


그런데 코로나 이후 거의 매일 등산이나 산책을 하게 되면서 운동화를 신을 일이 많아졌다. 계속 구겨신으니 신발 밑바닥이 기울어져서 걷는 게 불편해 지기 시작했다. 운동화를 새로 사야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운동화를 사기 위해서 그동안 소중히 찌워온 살을 베어낼 수도 없고… 나는 용기를 내서 235도 아니요 240도 아닌 245를 주문했다. 쇼핑tip에 ‘사이즈가 애매하신 분들은 한 사이즈 작게 주문하세요.’ 라고 적혀있는데도 용기를 내어서 245를 주문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245사이즈의 신발을 주문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틀 뒤 신발을 받자마자 든 생각은 ‘이거 정말 크다. 남자 같다. 싫다.’는 매우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내 발이 245가 된 걸 인정하는 게 245 운동화를 사 놓고도 어려웠다. 그런데 두 발을 245 신발에 넣으니 세상에나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수년간 신발은 늘 약간 조이고 불편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245를 신으니 오히려 신발을 신은 발이 더 편안했다. 와……… 내가 나를 그동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구나. 3학년이어도 공부 잘하면 4학년으로 월반을 하는 것처럼 내 발은 업그레이드(사이즈만)되었는데 내가 신발을 업그레이드 시켜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신발사이즈를 up 함으로서 드디어 나의 늘어난 신체를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M사이즈의 바지를 입은 날은 허리가 너무 낑겨서 주변을 보다가 아무도 안보면 허리에 단추를 풀곤 했었다. 이 얼마나 추잡스럽고 부끄러운 행동인가 하면서도 그 부끄럽고 추잡스러운 감정보다 하나라도 작은 사이즈를 입고 싶은 아가씨 욕망이 더 컸으니 그랬던 거다. 비웃지 말고 이해해주길. 그런데 이번에 신발의 편안함을 느끼고서는 용기를 내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L사이즈의 바지를 구입했다. 이제 추잡하게 사람 없을 때 허리 끌르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 바지 입는 데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모순적이면서 웃긴 사실은 신발사이즈와 바지 사이즈를 up하고 나니 오히려 살이 빠질 행동을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과 허리가 편하니 더 많이 걷고, 아이들 자전거 탈 때 옆에서 같이 뛰고 (원래는 ‘얼른 한바퀴 돌고와. 파이팅’ 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등산도 더 자주 간다. 여자는 구두를 신어야 예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주로 구두를 신었었는데 이제는 세상편한 245사이즈 운동화를 신고 외출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아이들과 더 신나게 놀고, 지름길을 찾아다니지 않고 오히려 꽃이 많이 심어져 있는 길을 찾아 두르고 둘러서 집에 오고, 식품은 택배주문보다 근처 마트가서 직접 사오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무지무지 아이러니 한 일이다. 사이즈를 up한 효과로 실제 몸은 사이즈가 down되고 있다니. 신발과 옷 사이즈를 키운 후 요 며칠 사이에 배가 쏘옥 들어간 게 이를 증명한다. 원래 내 폰 갤러리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이들 사진만 가득했었는데, 요즘은 날씬해진 내 배와 얼굴을 찍은 사진이 종종 등장하니 이 또한 우습지 아니한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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