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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Apr 06. 2020

벌거벗은 내 몸과 쌩얼에 익숙해지기까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내 알몸과 쌩얼

나는 매일 멋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멋쟁이 소리 한 번 못듣고 사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 기초화장이라도 하지 않으면 민망해서 못견뎌한다. 그리고 화장해서 예뻐지는 내 얼굴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자아도취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 회사에 출근하는데 화장파우치를 친정집에 놓고 온 사실을 일요일 밤에 깨닫고는 회사 근처 편의점이나 혹시 어딘가 문을 연 화장품가게가 있으면 출근을 하고 아니면 월차를 내야지라는 월요일 아침에 하기에는 아주 용감한 생각을 하면서 출근을 했다. 그날 월차를 냈냐고? 하하하 아침 열시 출근이라 다행히 내가 도착할 때 즈음 문을 열고 있는 화장품가게가 있어서 화장품을 몇가지 살 수 있었다. Test고 뭐고 그냥 세일 많이 하는 비비크림하고 눈썹연필을 사서 막 찍어댔다. 


이렇게 화장에 연연하며 오랜 세월 살아온 나이기에, 결혼해서도 얼마간은 남편에게도 맨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화장지우는 것이 귀찮은 척 하며 자기 바로 직전에 화장을 지우곤 했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을 하나 안하나 내가 봐도 큰 차이가 없는 데도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이 무진장 싫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니 이 오랜 습관도 바뀌었다. 세상에 너네는 어쩜 나를 그렇게 잘 바꾸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행복한 꼬질이 아줌마 -노메이크업]


너희가 태어나서 꾸물꾸물 대는 데 왜이렇게 만지고 싶고, 얼굴을 갖다 대고 연신 부비고 싶은지. 솜털이 총총 나있는 보드라운 너희 피부를 보고 있으면, 얼굴, 팔, 다리, 배 구분없이 연신 만져대고 싶다. 그런 너희가 햇살을 받으면 솜털은 더 하얗게 눈부시게 빛나고, 피부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하이얀 목련꽃잎같은 눈부신 아름다움은 배가 되어서 손으로 만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얼굴을 막 부벼대고 싶어진다. 화장한 얼굴로 너희를 만져댈 수가 없으니 화장을 안하기 시작했지. 아무도 안만나는 집에서도 혼자 거울보며 비비크림을 발라댔는데, 햇빛받아 반짝이는 너를 본 순간부터는 그냥 세수하고 아무것도 안바르는 후질근한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아기 엄마들도 예쁘게 하고다니면 좋겠는데 다들 왜이리 꼬질꼬질하게 하고다니나 속으로 욕했는데, 내가 우리나라 대표 꼬질이아줌마가 되었으니 어찌할까나. 꼬질이어도 좋다 너희를 만질 수 있다면




[ 즐거운 벌거숭이 엄마 ]


너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놀이가 ‘물놀이’ 아니겠니? 계절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놀이만 하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웃어대는 너희에게 어찌 물놀이를 안 하게 할 수 있겠니. 근데 또 어린 너희들만 욕조나 물속에 넣고 빠져나올 수도 없고.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한 채로 너희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자니 재미도 없고, 자꾸 옷에 물 튄다고 짜증이나 내고, 별수 있나? 나도 같이 벗고 신나게 노는 수 밖에. 그렇게 너희가 물놀이를 하면 나도 자연스레 옷을 다 벗고, 화장을 다 지우고 같이 신나게 논다. 그게 가장 재미있으니까. 


요즘에 너희는 화장실 청소에 푸욱 빠졌지. 빨개벗고 화장실을 구석구석 닦고 헹구고 닦고 헹구는 쉽지 않은 일을 너희는 깔깔거리며 너무 즐겁게 한다. 귀가 얇은 나는 너희들 깔깔대는 소리에 이게 진짜 재미있나 하고는 같이 빨개벗고 화장실에 들어가 청소를 한다. 하하하 신기하다 청소도 너희랑 같이 하니까 정말 재미있다. 한참을 청소하고나면 우리도 닦자 하면서 욕조로 뛰어들어 우리 몸도 깨끗이 닦는다. 벌거벗은 아들 딸 그리고 내가 함께 그렇게 자연인이 되어서 논다. 그렇게 노는 게 재미있으니까. 얼마 전에 스위스 책에서 알프스 산맥의 자연을 만끽하고자 알몸으로 등산하는 사람이 많아서 '알몸 등산 금지' 표지판이 생겼다는 내용을 아이들과 읽었다. 책을 읽다가 내가 우리는 '알몸 화장실 청소 금지'라고 외쳤더니 서로 눈을 마주보며 얼마나 깔깔 웃어댔나 모른다. 알몸이어서 더 즐거운 우리의 화장실 청소.



그렇게 시작된 집에서의 벌거숭이와 노 메이크업. 너희 덕분에 남편 앞에서도 이제 화장을 지운 내 모습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매우 건조했던 내 피부가 요즘 촉촉해진 느낌이다. 로션을 바르고 에센스를 발라도 건조함이 느껴지고 당기던 피부가, 이제는 로션 하나만 발라도 당김이 없다. 너희 덕분에 원래의 내 피부와 많이 친해졌다. 당당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화장안한 내 모습과 친하게 되었다.


몸매에 자신이 없는 나는 내 벗은 몸이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보고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늘어가는 살이 얄미워서 왜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너희와 함께 알몸으로 목욕하고, 청소를 하면서 내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몸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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