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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Oct 22. 2020

나는 집안일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나를 위해 눈떠서 나를 위해 살 거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일어나서 눈을 뜨자마자 "내가 그렇게도 미루던, 미루고 미루어서 자기 전에 혹은 주말에 몰아서 하던 그리도 멀리하고 싶어하던" 집안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드라마에서처럼 고급스럽지만 아주 깔끔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침대와 하얗고 폭신한 이불과 베개 속에서 나와 한강변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크게 켜고, 모닝커피를 마시는 우아함은 내 아침에 사라진 지 오래다. 아니 사실 결혼 전에도 그런 아침을 맞이해본 기억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드라마 속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는 건 결혼과도 아이 출산유무와도 사실 무관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집안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결혼과 출산 전에는 집안일로 하루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한강이 보이지 않고, 여주인공처럼 가녀린 몸과 하늘하늘한 잠옷을 입고 있지는 않아도 몸을 각성시키기 위해 모닝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긴 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늘, 항상, 제일 피하고 싶고 줄이고 싶은 집안일로 하루를 시작하면 굉장히 우울하다. 그런데도 나는 대부분의 시작을 집안일로 열 수밖에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이불을 헤치고 나간 아이들의 이불을 정리하고, 아침부터 먹성 좋은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을 준비하거나 지저분한 식탁을 치우고 있을 때, 아들이 편한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느긋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3년째 공주 옷에 빠져있는 딸은 유치원 가기 3시간 전부터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다 꺼내고, 자신이 가진 머리띠를 죄다 가져와서 어떤 게 잘 어울리나 매우 진지하면서도 신나는 표정으로 코디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대리만족이 아닌 질투를 느낀다.

    

‘나도 아침에 눈떠서 세수한 뒤에 커피 한 잔 타서 보조 테이블에 딱 놓아두고,

아침 햇살을 맡으면서 저 사람처럼(내 아들) 책장을 넘기고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나도 아침시간에 저 사람(내 딸)처럼 오늘 입을 옷을 여유 있게 고민하고 예쁘게 입으면 소원이 없겠다.’     





아이는 아침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열 수 있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사실을 알까? 그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아프리카 아이들은 지 나이가 되면 밑에 아기 동생들을 돌보느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는 것을 알까? (말도 안 되는 비교임을 저도 압니다만) 물론 나도 어릴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하루를 열 수 있는 것이 굉장한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책이 되었든, 인형놀이가 되었든, 퍼즐이 되었든 내가 시간만 있으면 하고 싶을 만큼 즐거운 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만 주어진 엄청난 특권이다. 오직 어린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자기 전에 '내일 아침 식사메뉴는 뭘로 해야 하나'라는 걱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서, 눈을 뜨면 '아침 준비 얼른해야지'로 머릿속을 채우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나는 집안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데 하루 종일 온갖 집안일이 내 머리를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하루의 끝과 하루의 출발을 집안일에게 내어주다니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내가 원하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하얀 고급 침대에서 눈을 떠서 누군가 내려주는 모닝커피로 우아하게 마시며, 그날 사업에 필요한 약속들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여는 모습을 꿈꿔왔다. (나도 안다. 이 모습은 결혼과 출산과 전혀 무관하게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도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

     


그래! 결심했어! 나도내일 아침은 집안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시작해보자! 내 마음대로!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보자.

     

주말에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날을 골라 이 계획을 실행시켜 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나만의 아침시간 만들기. 그 시작은 내가 눈뜨고 싶은 시간에 눈뜨기였다. 늘 새벽에 일어나는 부지런한 아이들 덕분에 수년간 원치 않는 새벽 기상을 해왔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눈뜨고 싶을 때까지 잠을 쭈욱 자리라. 실행 전날 남편에게도 나의 다부진 목표를 공유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떠드는 소리에 잠시 눈을 잠이 깼지만 나는 내 마음 끌리는 대로 하리라 마음먹었기에 다시 잠을 청했다. 실컷 잤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니 아침 8시 30분이었다.      


‘개운하다 개운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눈을 뜨는 오늘 하루의 시작 Goooood'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적막이 흐르는 집은 어색하다 못해 이상했다.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아이들의 모습도 남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히죽히죽 웃음이 흘러나와야 할 상황 같은데, 고요한 집에 나 혼자 있자니 가을바람이 머리칼을 스치듯 외로운 감정이 내게 왔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어디 있지? 남편의 정겨운 사투리는 어디 갔지?’     

원래 나의 계획대로라면 잠을 자고 싶은 만큼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책에 푹 빠져서 아들처럼 책을 즐겨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아이들이 없는, 집안일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 나에게 자꾸만 외로운 생각과 감정을 주었다. 정신 차리자 이연주! 자! 네가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을 듣던가, 헝가리안 랩소디를 틀어놓고 네가 좋아하는 미술책이나 역사책을 보자! 육아서는 안 돼! 나를 위한 시간이니까!     


어제 아이들을 재우고 수차례 들었던 헝가리안 랩소디를 다시 재생시키고, 책상 앞에 앉아 미술책을 펼쳤다. 이제 이 시간을 만끽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나도 모를 무언가를 찾듯 부엌을 서성거렸다.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에 거실에 갔다가 아이 방에 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집안 곳곳을 왔다 갔다 분주히 움직이면서 아침도 준비하고, 거실 정리도 하고, 아이들 옷도 챙겨 입히고 해야 하는데...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자니 으스스할 정도의 적막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글씨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분주한 아침, 아이들의 목소리와 그 생기발랄한  분위기가 너무 그리워졌다.     





엄마~~~~~~~~~~~ 엄마~~~~~~~~~~   


아침 산책을 다녀온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다시금 생기가 돌면서 얼굴에 편안한 미소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집안 곳곳을 누비는 나의 아침이 진정한 아침이지!  

 집안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어른이 되면 당연한 일이지!

 일상생활을 살아가기 위한 의무 중의 의무라고 할까.'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책을 읽는 아들의 모습이 부럽긴 하지만,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들은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현재 보내고 있는 것임을 안다. 지금의 일상이 지금의 나에게는 최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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