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일이 없는 날이면 평일에 아이들이 유치원에 등원한 후에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곤 하는데,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는 약간의 스릴이 있어서일까 밤 시간은 낮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다. 그 밤 시간을 만끽할 생각에 들뜬 마음을 아이들 앞에서는 졸린 표정으로 가까스로 감춘 채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고양이보다 더 가벼운 걸음으로 아이 방에서 나오는데, 그때부터가 매우 짧지만 아주 굵은 나의 진짜 하루의 시작이다.
하브 에커의 [백만장자 시크릿]에서 돈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 구절이 있다.
‘돈은 지금의 당신 모습을 더하게 만들 뿐이다. 비열한 사람이라면 더 비열해지는 기회가 될 것이고, 다정한 사람이라면 더 다정해지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욕심쟁이는 돈이 많아질수록 더 욕심쟁이가 될 것이고, 넉넉하게 베푸는 사람은 돈이 많아짐으로써 더 넉넉해질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해야만 하는 회사일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시간 말고, 오롯이 나 혼자 있는 여유 시간에 내가 하는 행동이 진짜 나를 나타낸다고. 진짜 나의 모습을 더 보여준다고. 나만의 시간에 영화를 본다면 그는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영화인일 것이고, 운동을 한다면 진짜 운동을 좋아하는 체육인일 것이고, 아무 너튜브나 무제한 시청한다면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거나 나 자신에 대해 무지한 사람일 것이다. 그럼 나는 아이들이 잠든 후 내 시간을 더 가지게 되면 무엇을 하며 보내는 사람인가?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매우 심플한데 그저 한 예로 나의 어제만 보아도 내 시간 보내는 법을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어젯밤에도 아이를 재우고 소파에 앉아 아주 심각하게 진지하게 고민했다.
‘파멸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에로 부부’를 시청할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풍파가 담긴 인생 드라마 ‘고부열전’을 볼 것인가, 극빈층을 더 잘 알고 도움을 주고 싶어 내 돈 주고 산 재미는 없지만 배울 게 많은 멜린다 게이츠의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책을 읽을 것인가.'
TV의 자극에 의지하여 멍~하니 있고 싶은 나와, 빈곤층의 실상을 알고 그들을 돕고 싶은 멋진 내 마음은 내가 진짜 나를 만나는 밤 시간에 늘 충돌한다. 신기하리만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내 안의 둘은 매일매일 충돌한다. 나를 키워주는 인문고 전서나 빈곤층의 삶에 대해 알아가려는 발전적인 나와, 오전에 열심히 일했고 오후에 아이들과 열심히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는 쉬자는 나와의 갈등. 그렇게 어제도 어김없이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고 있는데 방에서 ‘힝~ 이힝~’ 소리가 들린다.
자다가 갑자기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다섯 살 난 딸이었다. 몇 번 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하더니 감고 있던 눈을 떠서 화장실로 걸어간다. 손으로 엄마도 들어오라고 손짓하면서. 그리고 변기에 앉아서 큰일을 보며 부스스한 얼굴로 질문을 한다.
“엄마 내 병명이 뭐예요?”
“음. 채윤이는 지금 안 예쁜 똥을 싸니까 굳이 병명을 찾자면 설사이겠지? 근데 병명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닌데 지금 네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 괜찮아.”
“아니, 병명이요. 병명이 뭐냐고요.” (잠결에 똥 싸면서 짜증 내는 딸에게 화를 내? 말어?)
“설사가 아니라면 우리 예삐 챈은 공주병이지 하하하하”
“아니! 아니! 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병명이요!”
“아~~~ 별명? 우리 채윤이 별명은 복숭아지요. 볼이 동그랗고 발그레해서 예쁜 복숭아.”
그렇게 잠자리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수고를 몇 번 더 하고서야 아이는 배가 편안해졌는지 잠이 들었다. 그런 딸이 안쓰럽기도 하고, 잠결에 이야기하는 게 웃기기도 해서 나는 옆에서 계속 아이 배와 손을 만지면서 옆에 누워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언제 만져도 참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누워서 꼭 잡고 있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이의 묘한 기운에 취해서 잠들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진짜 나를 알 수 있는 귀한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나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진짜 나’를 극대화시켜주는 시간에도 나는 역시나 ‘아이’를 선택한 것이다. 잘하고 싶고, 해내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뛰어넘는 좋은 엄마이고 싶은 내 마음이 지금의 진짜 내 마음이라는 말이겠지. 선한 사람은 돈이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좋은 일을 하듯이, 나는 시간이 생기면 생길수록 ‘아이’ 생각을 하는 엄마이다. 시간이 생기면 생길수록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엄마이다. 입버릇처럼 내가 하는 일에 더 시간을 쏟고 싶다 하면서도 막상 시간이 생기면 ‘아이’를 선택하는 바보 같은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