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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Oct 29. 2020

아이들이 잠들고 시작되는 진짜 나의 시간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우주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이 나를 기다린다


일이 없는 날이면 평일에 아이들이 유치원에 등원한 후에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곤 하는데,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는 약간의 스릴이 있어서일까 밤 시간은 낮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다. 그 밤 시간을 만끽할 생각에 들뜬 마음을 아이들 앞에서는 졸린 표정으로 가까스로 감춘 채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고양이보다 더 가벼운 걸음으로 아이 방에서 나오는데, 그때부터가 매우 짧지만 아주 굵은 나의 진짜 하루의 시작이다.


하브 에커의 [백만장자 시크릿]에서 돈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 구절이 있다.

‘돈은 지금의 당신 모습을 더하게 만들 뿐이다. 비열한 사람이라면 더 비열해지는 기회가 될 것이고, 다정한 사람이라면 더 다정해지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욕심쟁이는 돈이 많아질수록 더 욕심쟁이가 될 것이고, 넉넉하게 베푸는 사람은 돈이 많아짐으로써 더 넉넉해질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해야만 하는 회사일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시간 말고, 오롯이 나 혼자 있는 여유 시간에 내가 하는 행동이 진짜 나를 나타낸다고. 진짜 나의 모습을 더 보여준다고. 나만의 시간에 영화를 본다면 그는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영화인일 것이고, 운동을 한다면 진짜 운동을 좋아하는 체육인일 것이고, 아무 너튜브나 무제한 시청한다면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거나 나 자신에 대해 무지한 사람일 것이다. 그럼 나는 아이들이 잠든 후 내 시간을 더 가지게 되면 무엇을 하며 보내는 사람인가?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매우 심플한데 그저 한 예로 나의 어제만 보아도 내 시간 보내는 법을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어젯밤에도 아이를 재우고 소파에 앉아 아주 심각하게 진지하게 고민했다.    

 

‘파멸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에로 부부’를 시청할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풍파가 담긴 인생 드라마 ‘고부열전’을 볼 것인가, 극빈층을 더 잘 알고 도움을 주고 싶어 내 돈 주고 산 재미는 없지만 배울 게 많은 멜린다 게이츠의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책을 읽을 것인가.'

      

TV의 자극에 의지하여 멍~하니 있고 싶은 나와, 빈곤층의 실상을 알고 그들을 돕고 싶은 멋진 내 마음은 내가 진짜 나를 만나는 밤 시간에 늘 충돌한다. 신기하리만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내 안의 둘은 매일매일 충돌한다. 나를 키워주는 인문고 전서나 빈곤층의 삶에 대해 알아가려는 발전적인 나와, 오전에 열심히 일했고 오후에 아이들과 열심히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는 쉬자는 나와의 갈등. 그렇게 어제도 어김없이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고 있는데 방에서 ‘힝~ 이힝~’ 소리가 들린다.

    

 

자다가 갑자기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다섯 살 난 딸이었다. 몇 번 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하더니 감고 있던 눈을 떠서 화장실로 걸어간다. 손으로 엄마도 들어오라고 손짓하면서. 그리고 변기에 앉아서 큰일을 보며 부스스한 얼굴로 질문을 한다.     




“엄마 내 병명이 뭐예요?”
“음. 채윤이는 지금 안 예쁜 똥을 싸니까 굳이 병명을 찾자면 설사이겠지? 근데 병명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닌데 지금 네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 괜찮아.”
“아니, 병명이요. 병명이 뭐냐고요.” (잠결에 똥 싸면서 짜증 내는 딸에게 화를 내? 말어?)
“설사가 아니라면 우리 예삐 챈은 공주병이지 하하하하”
“아니! 아니! 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병명이요!”
“아~~~ 별명? 우리 채윤이 별명은 복숭아지요. 볼이 동그랗고 발그레해서 예쁜 복숭아.”   

  

그렇게 잠자리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수고를 몇 번 더 하고서야 아이는 배가 편안해졌는지 잠이 들었다. 그런 딸이 안쓰럽기도 하고, 잠결에 이야기하는 게 웃기기도 해서 나는 옆에서 계속 아이 배와 손을 만지면서 옆에 누워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언제 만져도 참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누워서 꼭 잡고 있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이의 묘한 기운에 취해서 잠들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진짜 나를 알 수 있는 귀한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나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진짜 나’를 극대화시켜주는 시간에도 나는 역시나 ‘아이’를 선택한 것이다. 잘하고 싶고, 해내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뛰어넘는 좋은 엄마이고 싶은 내 마음이 지금의 진짜 내 마음이라는 말이겠지. 선한 사람은 돈이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좋은 일을 하듯이나는 시간이 생기면 생길수록 ‘아이’ 생각을 하는 엄마이다시간이 생기면 생길수록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엄마이다입버릇처럼 내가 하는 일에 더 시간을 쏟고 싶다 하면서도 막상 시간이 생기면 아이를 선택하는 바보 같은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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