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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Oct 30. 2020

자기 계발서 실행이 이렇게 어렵나

카레 만들기처럼 쉬우면 좋겠다

다시 한번 성장해 보겠다며 아가씨 시절 읽던 자기 계발서를 꺼내 들었다. 책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인 듯 글자 그대로 오래도록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책 위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고 잘 안 쓰는 물건을 그렇게도 부지런히 갖다 버렸건만 버리지 못하고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20대 때 읽던 ‘자기 계발서’는 ‘자기 계발’을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게으름과 ‘자기 계발’ 대한 나의 미련과 염원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렇게 참으로 오랜만에 육아서가 아닌, 경제서적이 아닌 ‘자기 계발 서적’을 읽었다. 아니 읽었다기보다는 다시 한번 볼 생각이 있는 책과 버릴 책을 가리기 위해 조금씩 내용을 엿보았다. 그때 읽은 내용인데 어느 책에 나오는지 도무지 다시 찾지 못해 출처를 밝히지는 못하지만 머릿속에 각인된 내용이 있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기 전, 모든 고민을 머릿속에 넣어서 잠자리에 들어라. 자려고 누우면 몸과 마음이 차분해져서 복잡하고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가 풀린다.
   

굉장히 참신하고 좋은 생각인 것 같아서 나의 고민을 잠자리에 가져가 보기로 했다. 나의 고민은 뭐니 뭐니 해도 사업을 키우는 일이므로 “매출 3배 이상 신장시키기”를 주제로 잡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곁다리 생각들도 모두 머리에 집어넣으려 애썼다.      


'광고를 더 해서 매출을 올려볼까? 그런데 광고비 이상의 수익이 나올까? 매출 신장을 위해 새로운 제품 라인을 구성해 볼까? 그러면 투자를 어느 정도 해야 할까? 새로운 제품 라인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요즘 잘 팔리는 제품은 어떤 카테고리일까? 매출이 안 좋은 제품은 검색어를 바꿔 볼까? 어떤 검색어를 사람들이 많이 찾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과 질문을 머리에 넣은 채 잘 시간이 되어 침대로 갔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일은 안 그래도 많은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의도를 가지고 고민으로 가득 채우니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눕자마자 잠이 들 것 같은  몸 컨디션이었다. 잠자리에서 차분이 생각을 정리하고 솔루션을 내야 하는데...     


잠들 것 같은 나의 뇌를 부여잡고,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 차분히 누워서 생각을 하면 좀 더 이성적으로 그리고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보일 것 같다는 희망을 가득 안고, 책에서 읽은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천천히 누웠다. 그런데 졸려서 잠을 자러 가는 사람의 표정이라기보다 매우 기대감에 흥분된 내 기운이 어두운 방 속에서도 느껴졌는지 베개에 힘차게 머리를 대는 나를 보고는 남편이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톤으로 말을 건다.     


“연주야. 너 안 졸린 거면 말 걸어도 돼? 나 내일 카레 먹고 싶은데, 카레 먹을까? 내가 오랜만에 애들 아침 해주려고. 고기랑 감자 있어?”     




아……. 잠자러 가는 내 발걸음이 평소와 너무 달랐던 탓인 가보다. 남편은 차분하게 내가 사업 고민 속에 파고 들어갈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카레 재료’ 이야기를 꺼냈다. 분명 내 머릿속에는 해결하고 싶은 현재 나의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남편의 ‘카레’ 이야기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0.1초도 안되어서 아주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줌마 모드로 뇌가 재세팅되어 냉장고 안 사정을 세세히 알려준다.


“응, 감자는 조그만 거 애들 주먹 크기 만한 거 2개 있고, 고기는 종류는 기억 안 나는데 파란 뚜껑 통에 있어. 냉동실에. 그리고 당근은 싱싱한 놈으로 2개 있어. 카레 가능하겠어. 카레 콜!”     


‘으이그 이 못난 아줌마야. 고민을 잠자리에 들고 가서 차분한 상태에서 다시 고민하면 해결책이 보인다고 해서 그거 실현하려고 고민 한가득 머리에 넣고 잠자리에 들었으면서! 사업 잘 되게 하기 위해서 광고를 어찌해야 하나, 새로운 제품을 구입할까 말까, 키워드는 어떤 걸 세팅해야 할까 생각에 생각을 해놓고서는 남편의 ‘카레’ 한 마디에 와장창 무너져가지고는...’     


책에서 좋은 문구를 읽고 실천 좀 해보겠다는 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울꼬. 내 사업 고민은 언제 해결이 가능할꼬. 카레처럼 그냥 해버리면 되는 데 왜 사업은 자꾸 조심조심하게 되는지. 사업 생각하다가 아이들 생각, 집 생각으로 넘어가기가 하루에도 수십 번.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뇌를 가지고 싶다. 모든 스위치가 꺼지고 ‘사업 관련 뇌’ 부분만 활성화되는 뇌를 하루에 4시간만이라도 가지고 싶다. 아줌마 모드로 ‘초고속 변환’되지 않는 뇌가 필요하다.     


분명히 나는 아줌마로 태어나지 않았는데, 자꾸만 시도 때도 없이 아줌마 모드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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