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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안녕 Jun 18. 2024

잃어버린 것들

 삶은 항상 과정이다

  관계


맨 몸으로 태어나 이런 저런 것들을 쥐고자 아둥바둥하다 결국엔 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 손으로 떠나는 것. 이 삶이라면 인생의 주된 목적은 얻는 것일까? 잃는 것일까?

 

  지금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얻은 것보다는 잃은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꿈꾸는 것, 좋아하는 것, 뭉글한 감정과 같은 정성적인 것을 많이 잃어버렸고, 돈과 안정적인 직업, 나이와 같이 정량적인 것은 조금 얻은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소중한 가족들을 잃으면서 어쩌면 나라고 생각했던 일부분이, 그들에게만 보여지던 페르소나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느끼는 삶이 더욱 황폐해 진걸까?


 인생에서 유년시절의 기억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이가 들 수록 체감이 된다. 상세한 기억들은 시간 속에 흩어졌지만, 문득 익숙한 바람 속에서 간질거리는 향수가 이는 것은 피부에 체감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언제나 같은 모습의 어린시절의 가족들, 내가 아끼던 인형, 어릴때 늘어질때 까지 즐겨듣던 이야기테이프 같은 것.

 20대 때는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게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자연스레 주어진 것들 같은 건 별로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 눈을 감아도 골목골목이 생생한 도시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그 곳에 있을 것만 같은 부모님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이 노래가 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한건 내게서도 슬슬 청춘이 떠나간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였을까?


 어느새 내게도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가는 지금, 내가 6살 때 이사를 왔다던 고향집의 구형 아파트는 너무도 낡고 보잘것 없어졌다. 엄마말로는 그 지역에 두번째로 생긴 아파트라고 했다. 그때의 뿌듯함은 삭아 바스러질 것 같은 갱지에 쓰인 집문서 만큼이나 낡아 있다. 어떻게 부모님은 삼십여년을 한 번 이사할 생각을 안했을까?  새 아파트, 그들의 신혼집이었다. 그 곳에 뿌리내린듯 자신들의 대부분의 생의 기억을 보낸 사람들. 그처럼 우직하고 한결같은 사람들.

 고향에 내려가면 무뚝뚝한 아빠는 늘 드라이브를 시켜줬다. 작은 바다마을인 나의 고향, 어린 시절부터 아빠의 낡은 자동차 뒷좌석에 실려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던 곳은 퍽퍽한 서울살이를 하던 내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물론 언제까지고 그의 차를 탈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운전대를 잡은 주름진 손을 잃어버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당연히 있었던 것, 혹은 사람이 사라진다. 그것은 사람은, 부모는 언젠가 나보다 일찍죽는다는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뜨는 밤처럼 이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잡아왔다면, 이제부터는 놓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별.

 계속해서 과거로 회귀하는 나의 공상은 잃어버릴 수록 더욱 움켜쥐고 싶은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부모가 남긴 유산은 거진 어린 시절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20대 청춘의 기억이 희미해져도 이상하게 어린시절의 향수는 더욱더 진해진다. 


 오늘도 나는 나의 젊음과 작별하지만, 긴 시절을 삶이라는 고단함과 싸워낸 그가 한 순간 그토록 사그라들었던 기억은 삶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리고 나


 삶은 항상 과정이다. 변화와 발전의 과정이며, 기존 구조와 태어난 환경이 주고받는 끝없는 상호작용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中 p.26-


 내가 삶을 부유하며 잃어버린 것들. 

생각하는 법과 삶을 사는 방식이 아닐까?

어렸을 때는 계속해서 무언가 되고 싶고 싶고 하고 싶었다. 너른 세상을 꿈꿨고, 사람들의 삶도 궁금했다. 자연스레 위시리스트도 작성하고 나만의 공상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귀찮다. 하고싶은 일도 더 이상 없다. 

 그렇다면 이대로 만족하냐고?

 그렇지는 않은 것이 문제다. 

  수 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네모난 작은 액정 속의 세상, 멋지게 차려입은 잘난 사람들의 비싼 옷과 휴양지, 맛있는 음식들, 그런 것을 보고 한 없이 부러워하는 시간들이 늘었다. 허황되게 나도 언젠가는... 하는 공상도 해본다.

 스마트한 생활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긴 했지만 생각까지 스마트하게 만들어 주진 않는 모양이다.


 나는 오히려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조금만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면 당장 검색해본다. 수천, 수만가지의 방안과 대안책이, 나의 욕구를 금방 충족시켜줄 수많은 게시글들이 있다.

 나는 간단히 거기서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좋은가?


 더 이상 엄마에게 전화해서 조리법을 묻지 않아도 유명한 요리사의 레시피대로 된장찌개를 뚝딱, 파스타를 뚝딱, 강원도 휴가지를 다녀온 동료에게 묻지 않아도 갖가지 사진과 후기까지 보고 이번 여름 휴가지를 고를 수도 있는... '내 생각만' 빠진 완벽하게 효율적인 삶의 방식이다.


 문득문득 자투리 시간이 날때면 어지러이 떠다니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휴대폰으로 최신 기사를 잃거나 SNS로 요즘 트렌드인 컨텐츠를 소비 한다. 요즘은 유행도 금방금방 흘러간다. 한 달을 못가고 새로운 거들이 쏟아진다. 그렇다보니 가만히 있는 시간이 지루함을 넘어 괴로움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생각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다지 밑전은 아니다. 나이 때문일수도, 삶에 대한 회의 때문일지도 모르나 이 편리하고 조그만 네모난 세계가 나의 시간을앗아 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다시금 다짐해본다.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길지언정 나를 돌아보는 사고를 하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또 하고싶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에리히 프롬은 삶은 죽을 때까지 늘 과정이라고 했으니. 

 성장일지, 퇴보일지는 내가 결정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멀리하자, 나의 가장 친한친구

  (스마트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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