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했던 것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최근 읽은 책에서 자신에 대해 잘 알기위해, 개성을 갖기위해서는 곰곰히 생각해야만 알 수 있는 자문자답을 해야한다고 한다. 시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답을 도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해야하는 그야말로 자아발견을 위한 탐구다. 스스로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 어쩌면 타인을 보는 것보다 어려운 과정이다.
난 뭘 좋아할까? 막막한 과제처럼 하루 종일 생각해 본다. 상당히 어렵다. 내 마음대로 정하는건데 뭐가 그리 어려운 걸까?
[취향상실 ->개성상실->자아상실]
비약일까?
생각보다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아니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나는 기호라는 것이 결여된 사람인건가?
스스로를 반성해본다
고심 끝에 쥐어짜 본 몇 가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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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음악과 향기로운 커피
감성을 울리는 따뜻한 에세이 읽기, 같은 맥락으로 잔잔한 발라드 듣기
만화방에서 한가로이 만화보기, 꼭 사각사각 종이책이어야 한다.
맛있는 간식을 지닌 간단한 소풍
화창한 날 그늘에서 느끼는 바람과 녹음을 바라보는 것
활공하는 새들의 모습을 관찰
이국적인 건축과 낯선 거리를 배회하는 것, 지칠 때 즈음 카페에 들르기
너른 논이 펼쳐진 시골길을 창문 열고 드라이브하는 것
바다.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
바닷가(바다와 엄연히 다르다), 모래사장과 그 깊이를 알아 볼 수 있는 얕은 물이 출렁거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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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 좋아해요?" 대학교 때 이성간의 만남 시 단골 멘트였다.
혹은 애프터시에 같이 영화보러 갈래요? 라든지...
영화라...
그러고보니, 좋아하는 영화를 꼽는 것은 참 어렵다.
요즘은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즉시 얼마 안가 그 영화는 상영관에서 내려지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테니.
내가 느끼기에 지금은 모든 것이 빠르다. 유행도, 흥행도, 이별도, 감정도.
꼭 인스턴트 삶 같다.
오전엔 슬픔의 나락에 빠져있다가도 저녁 땐 황홀의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오늘 날 삶의 스피드다.
그렇다고 그 순간이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진실로 슬프고, 기쁘고, 화나고, 머릿속이 터질 정도로 복잡한 감정이 확 일어났다 연기처럼 사그라든다.
갑작스런 디지털세계로의 전환으로 내 삶은 무궁화를 타다 ktx로 옮겨 탄 것 같다. 가끔은 세상이 나의 속도에 비해 너무 빨리간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이유로 내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 묻는다면 나는 오래된 영화를 뒤적거리게 된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클로져, 이프온리, 전부 20살 남짓 한 때 보던 영화들이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내 기억속의 그들은 언제나 핫한 미남미녀들이다. 가끔 그들의 최신 근황이 나오면, '헐. 언제 이렇게 늙었지.? 브래드피트, 할아버지가 되었네.'
내 나이는 생각은 못하고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그리고 또 금방 그들의 현재모습을 잊는다. 금발에 파란눈의 꽃미남으로 그의 모습은 다시 내 머릿속에 저장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취향.
취향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이는 요즈음이지만, 그럴 수록 개인의 취향은 몰락하고 대세의 취향만이 (조회수 좋아요수로 결정되는)횡행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 씁쓸해진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의 기호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더 이상 물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어야겠다.
너는 어떤 취향을 지닌 사람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