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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내 인생의 장기 프로젝트_15년짜리 계획

15년짜리 계획

by 마인드카소

작년 가을, 은평 불광천에서 열린 축제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타로 부스를 발견했다. ‘질문 하나 5천 원.’ 간판이 솔깃했다. 나는 곧장 줄을 섰다.


재능이 없는 건 알지만요… 저는 춤이 좋아서 3년 넘게 취미로 하고 있어요. 개인 레슨이든 뭐든, 더 배워보고 싶은데요. 제가 춤으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요?


타로사님은 내가 선택한 카드를 유심히 보면서 묘하게 웃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좋겠죠?”

하더니, 글쎄 한다는 말이... 나는 돈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런 조언을 했다.


“춤으로 뭘 차리거나 돈 벌 생각은 하지 마세요. 본업에 집중하면서 지금처럼 취미로만 즐기세요. 뭘 ‘이루려’ 하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냥 조금씩 느는 모습 콘텐츠 삼아 영상 찍고 SNS에 올려보고 학원 즐겁게 다니세요. 그게 딱 좋아요.”


“아… 그런가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춤이 좋아서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같았으니까.


“상처받으신 건 아니시죠? 완전 못 추는 건 아니세요. 타로는 사주와는 다르게 3년까지만 봐요. 그 이후엔 달라질 수도 있죠. 지금은 그냥 즐기세요. 개인 레슨도 과해요.”


그 주 토요일, 나는 20초짜리 동작을 한 시간 내내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손발이 안 맞는 현실에 직면했다. 순간, 타로사님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 타로집 용하네... 그래, 그분 말이 맞아. 춤으로 뭘 하려 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를 되새기며 별표치고 다짐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자 그 다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까맣게 잊혔다. 다시 ‘춤으로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취미지만 몸치라는 고정관념을 나를 위해 깨고 싶었다. 좋은 선생님께 배우고 시간을 투자하면, 나도 ‘조금 더 나은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즈음 학원에서 자격증 반 새로운 기수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이미 교육생이었다. 작년 가을 타로사님 말이 생각났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맣게 잊은 덕분에 나는 ‘올해 꼭 댄스 자격증 따야지’라는 결심이 바로 섰다.


그때 읽던 『자존감과 효능감을 만드는 버츄 프로젝트 수업』 책의 문장이 떠올랐다.

인간은 오직 자신이 원해서 행동할 때만 진실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내게 춤이 그렇다. 누구의 권유도 아닌, 오롯이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행위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마음처럼 안 되는 동작에 짜증이 나도, 연습의 지루함조차 ‘성장의 일부’라 생각하면 견딜 만했다. 안 되던 동작이 음악에 딱 맞게 들어맞는 순간의 뿌듯함. 어렵고 재미있는 춤의 매력이 이토록 중독적인 줄 몰랐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몸의 움직임을 차근차근 정복해보고 싶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하지만 재능 하나 없이도 이렇게 즐겁다는 사실이 늘 신기했고, 춤이 내 삶 속에 있다는 게 좋았다.


물론 욕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언젠가 그루브 있고 리듬감 가득한 ‘멋진 나’를 만나고 싶다. 그때 까지라면 10년, 15년, 아니 20년도 괜찮다. 그만큼의 시간쯤은 이미 투자할 각오는 되어 있으니까.



얼마 전 남편이 내 춤 영상을 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깔깔 웃길래 물었다.


“왜 웃어?”

“자기야, 자신감이랑 진지함만큼은 세계 1등이야.”

“뭐야~”

“몸은 이렇게 빳빳한데 표정은 너무 진지해서…ㅋㅋ”

“됐고. 지난달보다 나아진 점은 없어?”

“음… 안무를 좀 더 잘 외운 거?”

“동작으로는?”


대답이 없다. 쳇- 순간 소리쳤다.



자기야! 내 댄스 계획은 15년짜리야!



그 말,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 대사다. 한 번에 이루겠다는 욕심이 아닌, 단계를 거쳐 천천히 완성하겠다는 의지.


나 역시 춤에 조급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재능은 없어도 재미는 가득한 춤이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생각해 보았다.


재능보다 꾸준함을 믿어라.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라.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순수하게 즐겨 보라





지난 주말 자격증을 딴 뒤 동네 수목원 야간행사에 갔다가 타로 부스를 만났다. 무료란 말에 또 앉았다.


제가 본업은 있는데요,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나 더 얹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새로운 일은 물론 ‘춤’이었다. 자격증을 땄으니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또다시 굴뚝같았다. 타로사님은 한참 카드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기가 중요하네요.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일 아주 좋아요. 그런데 현재 본업을 버리고 완전히 갈아타는 건 무리예요. 지금은 본업 유지하면서 작게 시도해 보세요. 그 사이 실력을 더 쌓고, 5년 뒤쯤부터 천천히 확장하는 게 좋아요.



내 15년짜리 계획에 딱 맞는 조언 같아서 웃음이 났다.


조금은 서툴고 느려도, 그게 지금의 나답다.

누가 뭐라 해도, 결과가 더디더라도 괜찮다.


춤만큼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점을 찍어보려고 한다. 5년 뒤, 10년 뒤, 15년 뒤 그 점들이 연결되어 어떤 그림이 될까.


언젠가 지금의 나를 돌아봤을 때, “그때 댄스 자격증 따길 정말 잘했다”라고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때까지 꾸준히 춤추며 타로카드가 아닌 내 몸의 감각을 믿고 나의 리듬을 이어나가야지


앞으로의 내가, 참 많이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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