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이 끝난 다음 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먹고 눕고, 다시 먹고 눕고를 반복했다.
몇 달 동안 빠듯한 강의 일정 사이에서 수업과 오디션 준비를 병행하며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시험이 끝나니 마음의 끈이 툭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홀가분하지 않았다. ‘끝’이라는 단어 속에서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싫어서 외면하려는데 마음 한구석이 계속 속삭였다.
“이렇게 끝나는 걸까?”
그 질문을 곱씹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건 끝이 아니라, ‘내 춤의 다음 스텝’을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심사위원들이 들려준 피드백을 떠올렸다.
“동작을 조금 더 명확하면 좋겠어요.”
“기본기와 근력을 더 올려야 해요.”
나의 댄스 현주소를 파악하다 보니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 내 춤의 수준에서 무엇을 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오랜 경력의 춤 잘 추는 동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지금 제 수준에서 기본기를 쌓으려면 뭐부터 하면 좋을까요?”
“다이어트 댄스 수업 시작할 때 하는 기본 동작들 있잖아. 그거 그냥 하지 말고, 선생님이 알려주신 포인트를 하나씩 떠올리면서 해봐.”
“아하, 네 알겠어요! 그럼 언니가 보기엔 제가 자격증반 하기 전보다 나아진 점이 있어요?”
“그럼~ 세미나 영상 봤는데, 확실히 동작을 더 잘 친다?”
“‘잘 친다’는 게… 동작 이해도가 좋아졌다는 뜻일까요?”
“응. 이제는 동작을 더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해 봐”
“네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마친 밤, 나는 노트를 펼쳐 다음 스텝을 위한 나만의 댄스 계획을 세웠다.
오디션 때 했던 8분 근력 루틴을 주 5회
플랭크, 푸시업, 복근 운동을 정해진 횟수만큼 꾸준히.
몸이 굳으면 마음도 무거워진다.
춤은 결국 체력이다.
탄탄한 몸에서 힘 있고 멋진 춤이 나온다.
자격증 과정 영상을 복습하고, 장르별 기본 동작 루틴을 연습 후 촬영한다.
다이어트 댄스 수업의 시작과 마무리 동작도 의식적으로 신경 쓴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춤의 느낌이 안정적이고 보기 좋다.
지금의 엉성함은 ‘연습 시간’이 메워줄 거라고 믿고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눈으로만 외우는 춤’은 이제 그만.
틈날 때마다 몸으로 외워서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 한다.
내가 완벽히 안무를 익힌 곡은 리스트업 해둔다.
언젠가 내 수업에 쓸 날이 올 테니까.
매달 한 곡은 꼼꼼히 연습하고 촬영한다.
그날의 컨디션, 감정, 동작의 연결 등이 자연스러운지 체크한다.
성장은 기록으로 증명되고, 성장의 흔적은 영상 속에 있다.
안무나 동작 순서, 그날의 감정 등을 기록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노트는 내 자산이 된다.
미래의 나에게 “이때 이런 고민을 했구나” 하고 알려줄 기록이다.
이번 자격증 과정과 오디션을 거치며, 새로운 목표가 마음속에 생겼다. 꼭 기관 강사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춤 수업을 열어보고 싶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춤추는 클래스
혹은 ‘춤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
규모가 크지 않아도 괜찮다. 작게 시작해야 나 역시 부담 없이 꾸준히 할 수 있을 테니까.
“춤은 잘 추고 못 추고의 문제가 아니라, 춤이 있는 삶은 더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다.”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나처럼 몸치로 시작한 누군가가 “음악에 맞춰 움직일 수 있어서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순간을 꼭 보고 싶다. 내가 춤을 통해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센터 실습 때 강사 자리에 서 보며 생각했다.
춤은 자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즐겁게 할 수 있고,
댄스 강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댄스 강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고,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는 직업>이라고 정의하면 투머치할까?
확실한 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이 본인 춤만 잘 춘다면 강사로서의 성장은 미미할 것이다.
춤은 결국 ‘관계’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나의 관계, 강사와 수강생의 관계,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 사람은 관계 안에서 성장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단순하다.
체력과 기본기를 다지고, 매달 한 곡을 정성껏 연습해 영상으로 남긴다. 그 기록이 1년, 2년 쌓이다 보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수업을 시작하는 것에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중요한 건 ‘춤추는 나, 춤으로 성장하는 나’를 멈추지 않는 것.
킵댄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