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빅, 걸스, 힙합, 나이트댄스, 개인 자유곡, 티칭, 근력까지 오디션이 모두 끝나고, 여섯 명의 교육생이 심사위원들 앞에 나란히 섰다. 이제 마지막 순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심사평 시간이다.
두 분의 심사위원은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춤에 대한 평가와 보완점을 짚어주셨다.
한 분은 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몸이 가볍네요. 그건 장점이 될 수 있어요.
왼손 주먹을 잘못 쥐었어요.
루틴 숙지가 덜 된 건가요?
눈치 보지 말고 운동하세요.
동작을 좀 더 명확하게 연습하면 좋겠어요.”
다른 한 분이 말씀하셨다.
“기본기가 부족해요. 근력도 더 필요하고요.
숨차지 않고 차분해요.
숨이 차도록 적극적으로 춤을 춰야 해요.
힙합은 초등학생이 나와서 춤추는 것 같았어요.”
그 말과 함께 웃으셨고, 나도 살짝 웃었다.
하지만 웃음 뒤에 남은 건, 이상한 울림이었다.
‘초등학생이 춤추는 것 같다니?’
10살 초등학생을 키우는 엄마라 그런지,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머리로는 ‘웃어넘길 수 있는 말이지’ 하면서도, 주말 내내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그 한 문장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같다’는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 자리에서 심사위원께 직접 묻지 못한 게 자꾸 후회되었다.
춤을 못 춰서 초등학생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말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디지털 드로잉 강의를 할 때,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수강생의 그림을 보고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네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대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이런 방식으로 그려보세요.”
그 심사위원은 왜 그렇게 느꼈을까.
내 외모나 키 때문이었을까, 춤의 어설픔 때문이었을까, 동작이 작거나 숙지가 덜 된 탓이었을까, 아니면 옷 스타일 때문이었을까.
무엇 때문이든 ‘그렇게 보였던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까지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오디션이 끝난 날은 ‘초등학생’이라는 단어에 꽂혀 괜히 언짢았지만, 랄프왈도 에머슨의 『초역 자기 신뢰』의 한 구절이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던진 말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좋은 말에도 지나치게 들뜨지 말고, 못마땅한 말에도 함부로 주눅 들지 마세요. 결국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입니다.
그 구절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며 내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심사위원이 남긴 피드백을 곰곰이 되짚어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초등학생처럼 보였다’는 건 특정한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동작과 표현, 마무리, 스타일까지 총체적으로 미숙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렇게 받아들이니 금세 털어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이제 막 오디션을 준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사람에게 미숙함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약 내가 이미 능숙했다면, 지금쯤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초등학생 같다’는 말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가장 솔직한 심사평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초등학생'이란 단어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내 춤의 현주소를 파악했으니 다음 스텝에 대한 질문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부터 춤의 기본기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다시 연습을 쌓아갈 것인가.
근력은 또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나저나, 친구에게 오디션 후기를 나누다가 하다가 “글쎄 한 심사위원님이 나한테 초등학생이 춤추는 것 같대”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야! 요즘 초등학생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는데! 심사평 잘못됐네!”
“뭐???”
하… 글로 쓰면서 다시 킹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