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생님들께, 존경과 사랑을 담아...

by 마인드카소
저에게 좋은 댄스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새로운 댄스 학원을 찾을 때 늘 기도했다.
‘좋은’이라는 말속엔, 춤으로 나를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좋은 선생님일까?


1. 춤을 잘 못 추더라도, 그 호기심을 귀엽게 봐주는 선생님
2. 같은 걸 여러 번 물어도 구박하지 않고 또 알려주는 선생님
3. 질문이 많아도 유별나다 여기지 않고 기꺼이 답해주는 선생님
4. 연습하고 시간을 들이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주는 선생님
5.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했을 때 “좋아요, 해봐요” 지지해 주는 선생님


돌이켜 보면 내게 중요했던 건 선생님의 에너지와 언어였다.
몸이 피곤하면 말투가 예민해지고, 마음이 여유로우면 따뜻한 말이 나오는 것처럼 에너지와 언어는 늘 함께 움직인다. 또한 말은 습관이기에 자주 쓰는 단어와 말투, 목소리의 결만 봐도 그 사람의 성향이 보인다.


나 역시 드로잉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낀 적이 있다. 이모티콘 수업 중 한 수강생이 드로잉 앱을 너무 어려워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걸 묻고, 다음 날 또 물었다. 나도 모르게 ‘언제까지 이걸 반복해야 하지?’라는 마음이 스쳤고 그 마음이 전해진 걸까. 그분은 다음 수업부터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언어와 에너지의 미세한 결이 사람을 멀어지게도, 이어지게도 한다는 걸. 그 수강생의 포기가 내 탓 같아 오래 마음이 남았다.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만큼 언어의 힘에 예민하다.

그래서일까. 첫 번째 댄스 학원을 그만두었던 이유도, 개인레슨 회차가 남았음에도 중도 포기했던 이유도 돌아보니 결국 ‘언어’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와 선생님의 결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나는 첫 번째 댄스 선생님을 보고 첫눈에 반했고, 그만큼 춤에 깊이 빠져들었다.

처음 겪는 통제 불가능한 감정 속에서 3년을 헤매다, 그 인연을 완전히 매듭짓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거의 감정에서 벗어났다고 느꼈을 때, 나와 정반대 성향의 선생님을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는지, 사랑받으려고 애썼는지 스스로를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첫 선생님을 ‘나를 춤의 세계로 이끌어 준 인연’으로 마음속에 남겨 두었다.


새로운 댄스 학원을 등록하기로 결심했을 때, 남편과 친구들이 “잘 됐다”며 축하를 건넸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무슨 축하받을 일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지만, 그때의 나는 기운이 바닥나 있었다. 남편과 지금 학원 주위만 기웃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또 실패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새로운 곳에서 다시 춤을 시작한다는 건 내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새로운 학원에 적응하며 나는 일곱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1. 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2. 기존 것을 놓아야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3. 나답게 하는 관계는 애씀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4. 내가 춤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5. 춤추는 내가 정말 좋다

6. 앞으로의 내가 더 기대된다

7. 삶의 모든 이벤트는 선물이다


두 번째 댄스 선생님이 되어 주신 제시카 쌤과의 인연은 담백했다. 염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학원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갔다. 무엇보다 변함없이 춤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가르치는 사람은 기버(giver)다. 오랜 시간 몸으로 익힌 것을 타인에게 알려주려면 0부터 시작해야 하기에 그 과정에는 에너지, 시간, 인내가 필요하다. 알려주는 것이 ‘아깝다’는 마음이 끼어들면 좋은 수업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 미묘한 기운을 수강생은 금세 느끼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이란 끊임없이 배우고,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제시카 선생님과 나나 선생님은 내게 그런 분들이었다. 아이솔레이션, 리듬과 웨이브 등… 춤추는 방법뿐만 아니라 시간, 열정, 끈기, 연습의 의미를 유튜브 채널 운영, 수업 준비, 영상 촬영 등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쳐 주셨다. 나는 선생님들의 좋은 점을 기억하며 보여주시는 태도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선생님들이 애써서 알려주신 만큼 춤을 잘 추진 못했지만, 그 배움을 잊지 않고 하나씩 따라 해보고 닮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글로 남긴다.


무엇보다 생각지 못한 채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치유였다. 자격증 교육의 시간은 내 무의식 속 오래된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주시는 배움 속에서, 뾰족한 언어에 아파하고 미묘한 소외감으로 씁쓸해하던 지난날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업 중 선생님이 거울 앞에서 내 동작을 지켜보고 계실 때마다 ‘제발 저리 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지금은 늘 그 자리에서 지켜봐 주셨던 선생님의 시선이 감사하다.


교육은 끝났지만, 어디선가 나를 지켜봐 주신다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열심히 할 것이다.

예리한 눈빛으로 보시는 제시카 쌤과 어디 보자~ 보시는 나나쌤


나이트댄스 리듬이 너무 어려워서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오늘은 제시카 선생님께, 내일은 나나 선생님께, 모레는 동기 언니에게 물었다. 놀랍게도 나는 며칠 후에 또 같은 걸 처음인 듯 묻고 있었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했지만 누구 하나 구박하지 않고 또 알려주셨다.

끝내 내 몸은 그 리듬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디션을 보았지만 말이다.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오디션 때 어설픈 리듬 속에서 헤매는 나를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셨을까.





오디션이 끝난 후, 동기 언니에게 수업 사진을 보내며 메시지를 남겼다.

나: 이 풍경 뭔가 뭉클해요. 찡... 눈물 났어요. 언니 애썼어요

언니: 왜 이 사진이 뭉클혀? 내가 안쓰럽고 불쌍하냐~

나: 그냥 언니 어려워하는 티칭 한다고 애쓰고, 선생님들이 계속 기다려 주고, 알려주고, 도와주고... 나만 찡한 거예요?

언니: 그런 듯 ^^


언니의 톡에 잠시 웃었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여전히 마음 한쪽이 찡했다. 선생님도, 교육생 언니도,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얼굴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부모 자식처럼 운명이라 믿는다. 물론 혈연이 아니기에, 하루아침에 남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배움을 건네주신 분들이기에 맺어진 인연이 소중하고 운명이라고 느껴진다.


심사위원의 평가 기준으로는 부족함이 많았겠지만,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많이 성장했다.


치유했고, 회복했고, 변화했다.



모든 배움의 순간 속에서 서툰 저를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존경과 사랑을 담아,

민영 드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