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저는 지진아이죠.
제가 제일 못하죠 뭐…
선생님과 주변 분들께 민폐만 끼치고,
해도 해도 모르겠어요.”
이모티콘, 디지털드로잉, 디자인, 캔바 수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스타일의 수강생들을 만난다. 하나를 알려주면 셋을 척척 해내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하나를 알려줬는데 다음 시간엔 세 개쯤 잊어버리고 오는 분도 있다.
수업을 하면서 내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건, 한 번에 척척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출석하는 분들이다. 속도는 달라도, 그런 분들의 드로잉 실력은 결국, 반드시 는다.
“제가 예전에 수학 학원 선생님이었는데요, 포토샵이랑 이모티콘 배우면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알게 됐어요.”
한 수강생이 웃으며 건넨 말에 문득 고사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떠올랐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뜻.
과거에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아이들이 떠오른 듯, 그분의 표정엔 묘한 따뜻함이 번졌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늘 그런 의미가 있다.
익숙한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가는 일.
어설프고 서툴러도, 그 안엔 성장의 씨앗이 있다.
나 역시 강의실에서는 드로잉과 디자인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댄스 학원에서는 ‘헤매는 초보자’가 된다.
리듬은커녕 감도 못 잡고, 알려주지도 않은 엉뚱한 동작을 하다가, 같은 구간에서 몇 번이고 실수한다. 겨우 익힌 동작도 돌아서면 잊는다. 거울 속에서 낯선 몸짓으로 허우적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 ‘아이고’가 절로 튀어나온다.
그때 문득, 내 수업에서 헤매던 수강생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 그분들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아, 못해도 너무 못하네...
내가 춤을 배우는 게 맞나?
이렇게 해서 될까?
내 몸은 왜 이렇게 똑똑하지 못하지?
어휴… 동작은 또 왜 이래.”
지난주 수요일 댄스 수업 2시간 내내 헤매다가 디자인 수업 때마다 어려움을 겪던 한 수강생이 생각났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일은 더 잘 알려드려야지. 조금 더 반복해서, 더 천천히.’
그리고 이번엔, 끝도 없이 헤매는 나를 가르쳐 주시는 댄스 선생님이 떠올랐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수업이 끝나고 용기 내서 선생님께 톡을 드렸다.
“감 못 잡는 저를 데리고 수업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답답하셔도 저를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요즘 나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입장을 오가며,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가르치는 자로서는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인내심을 낸다. 한 번 더, 다시 설명한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게 나의 역할이다.
배우는 자로서는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잘하고 못하고 보다 중요한 건 어떤 태도로 배우느냐다. 그 태도가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
배우는 자의 태도를 생각하다가, 문득 다짐했다.
바쁘더라도 조금이라도 시간 내서 연습하자.
누군가 떠먹여 주길 바라지 말자.
스스로 먼저 해보고, 모르는 건 묻자.
바보 같은 내 동작도 그러려니 하며 견디자.
시간이 걸려도 연습하면 나아질 거라 믿자.
징징거리지 말고 씩씩하게 하자.
남과 비교하지 말고, 상대의 좋은 점은 보고 배우자.
어제 수업에서도 동작을 수없이 틀렸다. 그럼에도 인내심으로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 함께 배우는 동기 언니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연습해서 가장 확실한 BEFORE & AFTER를 보여주는 학생이 되고 싶어졌다.
디지털드로잉을 끝까지 배우려는 분들처럼, 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려 한다.
오늘은 몸이 안 따라줬지만, 내일은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배운 거 꼭 연습해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선생님, 제발 다음 주에도 저를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