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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잘 못 추지만, 설명은 잘합니다

by 마인드카소

왼발 짚으면서 두 손 입으로 뒤로 가기 (2걸음)

오른발부터 출발, 오른손으로 오른쪽 찌르기

스텝터치 오른발 먼저 찍는다. 왼발은 왼쪽으로

오른발 먼저 다이아몬드 스텝 2번


나의 춤 노트에는 이렇게 곡마다의 루틴이 순서대로 적혀 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만으로는 내 몸이 동작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상도 마찬가지다. 일시정지를 눌러 한 프레임씩 살피며, 신체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글로 붙잡아 둬야 한다. 어느 발을 먼저 내딛는지, 어떤 손을 들어야 하는지, 방향과 시선까지 세세히 기록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돌거나 골반이 반대로 빠지기 일쑤다.


선생님과 내 동작 비교해서 글로 정리하기



운동으로 다이어트 댄스를 할 때는 루틴 전체를 적진 않았다. 하지만 외우고 싶은 구간은 늘 이렇게 글로 정리했다. 춤을 못 춰서 찾게 된 나만의 방법이었고 몸보다 글이 먼저 춤을 이해했던 시간이었다. 평소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글이 친숙해서 글로 먼저 동작을 숙지 하는 것이 빠르고 편했다. 그걸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글로도 춤을 출 수 있다니!”


요즘은 자격증 과정을 하면서 선생님의 디테일한 설명, 자주 틀렸던 동작, 피드백까지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지하철에서 한 번씩 노트를 펼쳐 책처럼 읽으며 머릿속으로 동작과 전체적인 흐름을 그려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격증 오디션에서 ‘티칭력’도 심사에 포함된다. 자신이 선정한 자유곡을 시연하고, 일부 구간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드로잉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처음엔 생소한 카운트와 낯선 표현들이 어색했다. ‘카운트 설명하겠습니다’라고 입을 떼는 것도 주저됐다.


“어색해도 해야 해요. 일단 입 밖으로 뱉어요.”


선생님의 말에 용기를 내어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맡은 부분은 곡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구간이었다. 박자가 꼬이고, 말이 꼬이고, 동작이 엉켜서 선생님들 앞에서 진땀을 뺐다.


“우리는 ‘댄서’가 아니라, ‘춤을 지도하는 사람’이에요. 지도자는 회원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동작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해요. 카운트 다시 정리하고, 내일 조금 일찍 와서 다시 해봐요. 봐줄게요.”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카운트를 외우며 동작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카운트 설명하겠습니다. 원, 투에서 양발을 한 번에 오픈! 이때 오른손을 위로 쭉! 쓰리, 포에서 왼발은 오른쪽으로, 오른발은 뒤로 가볍게 차면서 왼발 앞에 크로스 착! 이때 오른손은 왼쪽으로 돌리면서 내려놓습니다..."


여러 번 연습하자 말이 다듬어지고 군더더기가 빠졌다. 아이를 회원님으로 세워두고 가르쳐봤다. 장난을 치면서도 동작을 곧 잘 따라 했다. 생각보다 ‘티칭’ 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어? 나 의외로 설명 잘하는데?’ 복잡한 안무도 차근차근 말로 풀어냈다. ‘춤은 못 추는데, 설명은 수월하다니... 이 조합 뭐지?’ 신기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바로 춤 노트였다.


몸이 안 따라줘서 동작을 글로 이해하려던 습관이 나를 ‘설명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오른발, 왼발, 팔의 각도와 방향까지 글로 정리했던 경험 덕분에 누군가에게 그 동작을 언어로 전할 수 있게 됐다.

수업 때 선생님이 오른쪽, 왼쪽, 앞과 뒤 등을 정확히 천천히 반복해서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몸치에게는 방향 하나도 난관이기 때문이다. “몸을 이렇게 쓰면 당연히 이 손이 올라가야 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외쳤다. “그게 말이지요, 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고요…” 몸치는 모든 동작이 ‘자신에게 설명’되어야 비로소 겨우 이해하고 흉내라도 내볼 수 있게 된다.


‘티칭력’은 춤을 못 춰서 생긴 내 안의 작은 힘이었다. 자격증 과정이 아니었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날, 선생님들 앞에서 다시 티칭 시연을 했다. 이번엔 자신 있게, 카운트도 또렷하게.


“목소리 톤이 좋아요. 설명도 잘하네요.”


칭찬 들어서 기분 좋았다.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민영 씨, 이제 춤만 잘 추면 되겠네요~”




남편에게 선생님께 칭찬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중얼거렸다.

“티칭은 괜찮고… 춤만 잘 추면 된다…

춤만 잘 추면 된다… 음...

티칭은 잘하는데, 춤은… 안 된다는 뜻이잖아?”


그 말을 세 번쯤 반복된 뒤, 진지하게 내게 되물었다.
“민영아, 그게... 칭찬이 맞아?”

“어? 아니야? 그런가? 칭찬이 아닌가?”
순간 서로를 보며 웃음이 빵 터졌다.


뭐든 괜찮다. 이제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춤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니까.

진짜 춤만 잘 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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