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친정으로 향하는 차 안. 선생님 춤 영상과 내 영상을 번갈아 보며 다른 점과 수정할 점을 적다 보니 노트 두 장이 훌쩍 넘어갔다. 같은 곡인데도 동작도, 느낌도 전혀 다르다. 선생님과 나. 그 차이는 생각한 것만큼 몹시 컸다.
창밖 풍경이 흘러가는 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리듬이란 도대체 뭐지?
핸드폰 메모장에 손이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리듬에 대한 문장을 쏟아냈다. 내가 생각한 리듬은 이랬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선생님과 함께 하면 될 것 같은데, 혼자 하면 절대 안 되는 것.
“이거구나! 이거야!” 싶다가도 곧 “아니구나…”를 빛의 속도로 깨닫게 되는 것
내 몸으로 ‘중간 리듬’을 깨우치는 날이 오긴 올까? 의심하게 되는 것.
한 번만 간지 나게 타보고 싶은 것.
발뒤꿈치, 발목, 무릎, 팔꿈치, 목, 가슴... 다양한 신체 부위를 움직이는 것
신체를 개 이상 이상 같이 움직이면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 (나)
나만 리듬 놓치면 외로워지는 것.
완전히 내 편으로 곁에 두고 싶지만 자꾸 멀어지는 것.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짝사랑 같은 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몸에 욱여넣고 싶은 것.
심장의 두근거림처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감 잡았다!’ 싶으면 그 순간 사라지는 것.
가끔은 춤추는 나를 작게 만들어버리는 것.
알 듯 말 듯, 결국 모르겠는 것.
리듬이란…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
뒤에서 조용히 창 밖을 보고 있던 열 살 아이에게 물었다.
“행복아, 리듬이 뭐라고 생각해?”
“엄마, 리듬은 운전 같은 거야. 타야 하잖아.”
운전 같은 리듬이라…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듯 강약이 있고, 도로의 흐름처럼 부드럽게 이어져야 한다. 아이 말이 맞다. 리듬은 결국 ‘탄다’는 감각, 살아 있는 몸의 운전 같은 거다.
리듬이란 뭘까?
생각은 며칠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SNS에 이렇게 질문을 올렸다.
“춤에서 리듬은 뭐라고 생각해?”
그랬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아마도 내가 리듬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주제넘을 수 있겠지만,
춤에서만 리듬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들어봐.
고개를 살짝 까딱이거나 손가락을 움직이는 식으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접근하면 리듬이 조금씩 가까워질 거야.
그 감각이 충분히 쌓였다고 느껴지면
그때 다운업 연습을 해봐.
한 곡, 두 곡, 세 곡, 네 곡…
아무 생각 없이 다운업만 계속 연습하는 거야.
결국 춤의 리듬은 다운업 안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손끝부터 시작해 보자.
댓글을 읽는 순간, 아! 무릎을 쳤다.
‘손끝부터 시작해 보자’
리듬은 작은 움직임 하나에서 시작되는 거였구나.
그 댓글을 읽고, 바로 다음 날부터 시도해 봤다. 거창하게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정말 손끝부터.
카페 음악이 흐를 때, 손끝으로 박자를 톡톡 맞춰봤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끝이 알아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엉덩이도, 어깨도, 발끝도 살짝살짝 따라 움직였다.
몸이 리듬에 맞춰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알 듯 말 듯했다.
리듬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동안 나는 ‘중간 리듬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작을 억지로 끼워 맞추곤 했다. 그러다 보니 춤이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어색했다.
리듬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음악에 나를 살짝 맡겨두는 순간, 그때 생겨나는 흐름 같은 것이었다.
몸은 여전히 버벅거리지만, 머리로는 아주 아주 조금 이해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연습한다.
리듬, 리듬, 리듬을 의식하지 말고 먼저 귀를 열고 음악을 듣는다.
일단, 손부터 까딱까딱 움직여본다.
리듬을 몸으로 정말 멋지게 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