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고 수국 꽃이 왔어

사랑하는 딸에게

by 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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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옮기려다 깜짝 놀랐다. 푸른 잎사귀 속에서 좁쌀 알갱이 같은 꽃대가 빠꼼이 올라 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깻잎 같은 이파리만 무성해지던 수국에서 드디어 꽃 소식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세 개의 수국 화분 중 꽃대가 올라오는 것은 막내 딸이 사다 준 것이었다. 딸이 결혼해 집을 떠난 뒤 한동안 무심하게 살펴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처음 화원에서 사왔을 때 꽃을 보고 난 뒤, 세 개의 화분 모두 몇 해가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우리 집의 일조량이 적어서 꽃은 포기하고 초록 잎이나 보자 생각했다. 그런데 식물들은 의외의 순간에 꽃대를 올려 심쿵하게 만든다. 네가 가고 수국 꽃이 왔어,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말에 딸이 놀러 왔다. 참외 샐러드와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어 왔다. 나 집안일에 소질 있나봐, 음식도 잘해. 그녀는 셀프 칭찬을 했다. 참외를 얇게 슬라이스 한 뒤 산뜻한 소스를 뿌려 준 샐러드와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먹으며 맛있어서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다. 라면이나 겨우 끓일까 귀찮다며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다. 시어머니한테 참외와 토마토를 한 박스 씩 받고 나서 양이 많아 처음에는 난감했단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요것 저것 색다르게 만들어 먹고 있어 식재료를 상하게 하는 일은 절대 없다니 알뜰한 그녀 답다.


딸은 주말마다 집들이를 하느라고 손목이 아프단다. 시부모님 좋아하는 양식 요리를 거뜬히 차려 대접했고 사위의 친구인 요리사에게도 음식 맛있다는 칭찬을 들었다나. 청소든 요리든 대충이 없고 꼼꼼하게 하려는 통에 신랑이 적당히 좀 하자고 한단다. 시집가기 전, 우리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약간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럴 거면 나 좀 도와주다 가지, 요리는 커녕 자기 방에 청소기 돌리는 적도 없었는데 웬일이람. 나는 속으로만 궁시렁거렸다.


딸은 자신의 집이 누군가 살던 집이었다면 청소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아 적당히 했을 것이라 변명하듯 말했다. 새 집이라서 더럽혀지는 것이 싫어 열심히 청소한다는 이유를 댔다. 음식을 할 때도 신랑에게 무거운 것 들어달라고 일일이 부탁하기보다 직접 하는 것이 더 빠르다니 손목이 아플 수밖에 없겠다. 아무래도 완벽주의자 아빠를 닮았나봐, 대충하는 건 성에 안차. 자기 살림이라서일까 걱정 했던 것과는 달리 야무지게 잘하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심이 된다.


수국 좀 봐, 네가 준 것만 피고 있어. 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꽃 보면 되겠네. 그녀는 분홍색으로 피어나고 있는 꽃을 보며 말했다. 수국은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꽃의 색을 달리해서 피는 독특한 식물이다. 노지에서 자라는 것은 한 그루 안에서도 파랑, 보라, 분홍, 연보라 등 다양한 빛깔로 꽃을 피운다. 뿌리는 하나로 이어졌어도, 햇살의 방향이 다르고 바람이 닿는 결이 다르듯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외부 환경에 따라 스스로를 조율하는 모습은 삶의 유연함을 일깨워 준다. 고집스레 한 색을 고수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아이가 가고 성숙해진 그녀가 왔다. 그녀가 문득 수국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녀는 나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자기만의 꽃대를 밀어 올리는 중이다. 둥글게 모인 오밀조밀한 꽃잎들은 마치 작은 마음들이 서로 기대어 하나의 큰마음을 이루는 듯 보인다. 수국은 어느 하나의 색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순백의 하얀 색도 있고, 파랗기도 하고, 분홍빛이 돌기도 하고, 때로는 보랏빛을 띄기도 한다. 그녀는 어떤 색의 꽃을 피울까. 사랑하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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