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항구 그리고 나
키 큰 갈대밭 사이에 길이 있었다. 드넓은 갈대밭 속에 도저히 항구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검푸른 하늘에는 손톱만 한 초승달이 걸려있고 옅은 안개 속에 날이 밝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십 척의 버려진 폐선. 그것은 풍요의 터전에서 배들의 무덤으로 바뀐 쇠락한 하제항의 실체였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폐항이 되어버린 곳이다. 물속에 잠긴 채 옆으로 누워있는 목선도 있고 완전히 잠겨 끄트머리만 보이는 배도 있었다. 육지에 널브러져 있는 배들 중에는 약간 녹이 슬었을 뿐 겉보기에 멀쩡한 배들도 여럿 보였다.
배들은 인간의 군상과도 닮았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중 옆으로 쓰러진, 삼분의 일이 물에 잠긴 배 한 척이 눈에 띄었다. 여러 개의 밧줄에 매달려 의지한 배는 아직은 멈출 수 없노라고 고기를 잡으러 떠날 수 있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버려졌을 듯하다. 이유도 모른 채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이제 여기저기 고장 나 삐걱대지만 더 녹슬기 전에 어디론가 길을 나선다. 떠나고 싶을 때 매번 떠날 수는 없는 일. 불쑥 발목을 잡는 것들은 늘 존재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녹록치 않은 현실처럼 밧줄에 묶인 채 낡아가는 저 배는 어쩐지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짠했다.
성진호, 신선호, 해진호, 해원 마린호와 세월 속에 이름이 지워져 알 수 없는 배들의 지난 시절은 어떠했을까. 고기를 잔뜩 잡아 만선으로 행복하게 돌아오는 날이 많았을 듯하다. 뱃머리에 나부끼는 깃발은 닳고 닳아 반쪽이 되었지만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듯 보였다.
커다란 방파제가 있는 흔히 보던 항구가 아니고, 그다지 크지 않은 돌을 쌓아 육지와 평평하게 맞닿은 모습은 낯설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번성했던 군산의 항구들은, 지나가던 개의 입에도 돈이 물려 있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었다.
새만금 간척을 하기 전에 하제 마을은 조개잡이로 유명했던 곳이었다. 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드넓은 갯벌은 노랑조개, 동죽, 백합, 모시조개 등이 많이 나는 보물 창고였다. 흔히 알고 있는 도구로 사람이 조개를 캐서 잡는 방법이 아니었다. 스크루가 달린 땅띄기 배를 사용해 잡을 정도로 조개가 많은 곳이었다니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간척 사업과 남획으로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연근해 어업은 위기를 맞이했다.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노후화된 어선을 폐선으로 하는 대신 보상금을 지급했다. 갯벌이 사라지자 포구의 기억을 잃은 마을은 자취도 없이 구멍 뚫린 벽과 허물어진 집들만 남았다.
영화롭던 시절은 언제 적 일인지 모르게 지나갔고 곳곳에 폐그물과 쓰레기가 쌓여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또 한 척의 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작은 어선보다는 제법 큰 규모의 배가 하늘 높이 뱃머리를 들고 있었다. 바다로 나아갈 수 없으니 이제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 꿈을 꾸는 것일까. 특이하게도 배의 중간에 구멍이 뚫린 곳에서 아래로 늘어진 채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썩어가는 나무토막에 뿌리를 내린 까마중과 노란 엉겅퀴였다.
이제 곧 겨울 추위가 닥칠 터인데 까마중은 푸른 열매를 잔뜩 달고 검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노란 엉겅퀴는 시든 꽃송이와 잘 여문 씨앗을 단 채 두 줄기가 서로 얽혀서 의지하며 사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흙이 한줌도 없는 썩은 나무토막에 늦게나마 싹을 틔우고 열심히 살아낸 그들이 대견했다. 나도 가을을 살아가고 있다. 가을은 낙엽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고 알베르 까뮈가 말했듯이 나이 듦은, 단지 쇠락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엉겅퀴의 홀씨는 하얗고 탐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새로운 여정을 찾고 싶은 내 마음을 그 배에 투영시키며 홀씨에 입김을 불어 후하고 날려 보냈다. 다음 생에는 멀리 날아가 이곳만큼 힘들지 않은 곳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하제항 슬픈 바다 위를 검은 가마우지와 기러기 떼가 무심히 날아가고 있었다. 배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들은척 만척 세상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