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무늬

퀼트 가방, 그리고 나

by 해은


서랍 속에서 물건을 찾다가 낡은 천 가방을 발견했다. 한동안 즐겨 들고 다녔던 퀼트 가방이다. 검푸른 바탕색이 빛이 바래 먹구름 같은 색을 띠고 있지만 이어 붙인 각각의 헝겊은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있다.


언젠가 퀼트를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그 당시 취미로 배우기에는 재료비와 수강비가 비쌌기 때문이다. 한참 세 아이들이 커나가는 때라 교육비며 생활비가 늘 부족하던 시기였다.


경제적인 부담과 함께 내게는 퀼트를 배우기에 불편한 점도 있었다. 다한증이 있어 손에 땀이 많이 나므로 간단한 바느질하기도 힘든 편이다. 바느질하다 보면 헝겊이 금세 젖어버리므로 뻑뻑해진 천에 한 땀 한 땀 꿰매기가 힘들다. 땀에 젖어 바늘이 자꾸 녹슬어 버리는 단점까지 있었다.


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할 수 없어서인지, 더 간절한 마음으로 퀼트 가게를 지나가다 보면 발길이 멈췄다.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항상 나를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가방이었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가방은 천으로 만들었기에 우선 가볍고 알록달록한 색감이 그림처럼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직접 만들 수 없으니 완성품을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비싸서 엄두도 못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 갔다가 기쁜 소식을 들었다. 바자회가 열리는데 퀼트 제품도 저렴하게 판다는 것이다.


드디어 바자회 날이었다. 우리 구역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며 종일 기다리는데 헛소문인지 헝겊 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신부님이 지나갈 때 물어보았다. 그제서야 깜빡 잊었다며 물건을 꺼내 오라고 시켰다.


기대에 차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막상 탁자 위에 가져다 놓은 것들은 종류가 많지 않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것저것 재빨리 들춰 보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코발트빛 가방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싶어 얼른 집어 들었다. 가격은 단돈 2만 원. 횡재한 기분이었다.

세련된 디자인은 아니지만 어두운 코발트빛을 바탕으로 갈색과 남색, 녹색, 청보라색 등 조각천이 이어져 색의 배열이 아름다웠다. 내가 대체로 좋아하는 색의 조합이라 눈에 띄었던 것이다. 크기도 딱 알맞았다. 잡다한 소지품이랑 책과 노트를 넣을 수 있을 만큼 넉넉했다.


오랫동안 그 가방은 나와 함께 보냈다. 힘들고 지친 일상을 내 어깨에 걸쳐져 함께했다. 자세히 보니 가방의 무늬에 그동안 내가 지내왔던 모든 날들이 다 들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매었던 날들, 가끔은 장미꽃이 피어나듯 행복하던 날도 있었고,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길잡이 해줄 때도 있었다. 나는 왜 퀼트를 배우고 싶었을까. 그 당시 어두웠던 내 일상을 알록달록 밝게 가꾸고 싶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짙은 남색 조각천은 노란색으로 변하고 암갈색은 분홍빛으로도 바뀔 수 있겠지. 가방 안에는 작은 바람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의미 있고 새로운 가치의 것들로 채워 나가며 끊임없이 시간의 무늬들을 이어 붙인다.

내 삶의 조각보는 훗날, 화려하진 않아도 은은한 멋을 지녔으면 좋겠다. 내일은 또 어떤 무늬를 이어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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