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은 똑똑히 봤다. 민환의 아내가 발가벗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을. 윤수는 화장터에서 그게 린이 저지른 짓이라고 말했다. 성문은 납득할 수 없었다. 민환의 아내가 실족사를 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린은 어떤 물리적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수는 또 이 자리에서 린이 민환의 아내를 죽였다고 한다.
“린이, 어떻게 기찬이 엄마하고, 민환의 아내 죽였다는 거니?”
“초능력을 써서요.”
“초능력?”
“네.”
성문은 의심의 눈초리로 윤수를 쳐다봤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윤수는 식탁 한 곳 만을 응시한 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린에게 어떤 초능력이 있다는 거니?”
이윽고 성문이 묻자 윤수가 대답했다.
“린이 그랬거든요. 자기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요. 선생님 아내를 죽이기 전에도 자기 엄마를 강간한 마을 남자 3명을 죽였다고도 했어요.”
이대로 듣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성문은 벌떡 일어나 안방에 들어갔다. 수첩과 펜을 가져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윤수가 말한 내용을 요약해 적은 뒤 물었다.
“기찬이 엄마, 민환이 아내, 그리고 마을 남자 3명. 이 사람들 말고도 린이 또 죽인 사람이 있니?”
“네. 자기 엄마요.”
“연서를 죽인 사람이 린이라고?”
짐짓 성문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가 처음으로 흔들린 순간이었다.
“네, 린이 그랬어요. 자기가 죽였다고.”
“좋아, 네 말대로 이 사람들을 린이 다 죽였다고 치마.”
성문은 수첩에 살해당한 사람들 이름을 동그라미 치며 말했다.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자, 윤수가 초점 없는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가정이 아니라 그렇다고 할게.”
성문이 정정하자 윤수가 다시 시선을 아래로 했다.
“민환이랑 아까 통화를 했다. 병원에 전화해 보니까 정말로 린이 없어졌다고 하더구나. 네 말대로 린이 이 마을에 온 건 맞는 거 같아. 그런데 말이다,”
성문은 본격적으로 궁금했던 걸 물었다.
“너는 린이 폭포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고, 린은 왜 거기서 떨어진 거니?”
“느낌으로 린이 그곳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느낌?”
“네. 그리고 자살했으니까요.”
성문이 사건 내용을 적다 고개를 들었다. 성문과 윤수의 눈이 마주쳤다.
“린이, 자살을 했다고? 왜?”
성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윤수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린이 왜 자살을 했는지 모르시겠어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세요?”
성문은 정곡을 찔려 윤수의 눈을 피했다.
“그래... 자살할 만하지... 그 어린 나이에 고통 속에 살았으니까.”
윤수는 컵을 집어 우유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쭉 들이켰다. 말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어디 가는 거야?”
“제 얘기는 다 끝났으니까 쉬려고요. 아빠도 조심하세요. 린에게 찍힌 건 아빠도 마찬가지니까.”
윤수는 감정의 변화가 없는 시선을 준 후, 다락방 위로 올라갔다. 옆으로 몸을 돌려 누운 채 이불을 덮었다. 성문은 그런 윤수를 가만히 쳐다봤다. 윤수가 왜 저러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그였다. 일단 마을 이장에게 찾아가기로 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
성문은 바로 마을 이장 집으로 향했다. 벨을 누르자, 확인도 없이 대문을 열어주는 그였다. 성문이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 앞에 서자, 이장이 현관문을 열었다. 그는 전과 다른에 기력이 쇠약한 모습이었다. 아무렴, 박중구가 경찰에 잡혀간 것도 모자라 채연서와 기찬의 엄마가 죽고 린까지 실종된 상태니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래, 뭐 물어보고 싶어서 왔제? 들어와서 얘기해라. 다 대답해 줄 테니까.”
이장은 성문을 들여보낸 뒤 소파에 철퍼덕 앉았다. 성문이 그 앞에 서서 물었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말해라.”
“혹시 제가 이사 오기 전에 마을에 남자 3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까?”
생기 없던 이장의 눈이 번뜩였다.
“갑자기 그건 와?”
“민환의 아내가 죽고, 채연서가 죽고, 오늘은 학교에 있는 학생 엄마가 죽었잖습니까. 이 세 사람에 대한 연결점을 찾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연결점 없다. 다 사고사로 죽은 거 아이가.”
“어떤 사고죠?”
“실족사지 뭐.”
“그 사람들 혹시 다 채연서 성폭행하던 자들입니까?”
이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선생님 솔직히 말해 주세요.”
“맞다. 어떻게 보면 연서 입장에서는 잘 죽은 거지.”
말을 마치고 게 눈 감추듯 크흠, 거리며 시선을 돌리는 이장이었다.
성문은 윤수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는 놀랐지만 얼굴에 표를 내지 않았다.
“그 남자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윤한수, 최길우, 구형진이다.”
구형진은 구형석의 아버지였다.
“고맙습니다.”
성문이 꾸벅 목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성문아, 잠깐만.”
이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내도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되나?”
“네,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고, 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말이다.”
“뭐가 말입니까?”
“내 오늘 오전에 린 갸를 봤거든?”
“예? 린을요?”
성문이 눈을 크게 떴다.
“누가 벨을 누르길래 문을 열어주고 보니 갸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아이가. 그래서 내가 너 병원에 있는 거 아니었냐고 물었는데,”
이장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뒤 입을 뗐다.
“내, 그때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폭포 앞이었다. 바로 코 앞이 절벽이었고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카지 뭐나.”
“그리고 윤수가 린이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고 이장님께 말한 겁니까?”
“그래. 나도 겨를이 없어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신고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다 안카나.”
성문은 입술을 매만지며 집에서 윤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린이 그랬거든요. 자기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요.'
성문이 고개를 들고 이장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린에게 원한을 질 일을 한 적이 있나요?”
“원한? 내가 뭐 한다고 갸에게 원한 질 일을 하겠노. 쓰잘떼기 없이.”
“알겠습니다. 민환이랑 이야기를 해볼게요.”
성문은 몸을 돌린 뒤,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그리고 선생님. 제 생각에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보통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네가 조사를 하면 안 되겠나. 이 말을 하는 기지?”
“네.”
성문은 대답을 한 뒤 입술을 한일자로 다물었다.
“그래, 이제 내도 다 모르겠다. 니 알아서 해라.”
이장은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성문에게 가지고 있었던 감정도 마을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인해 파쇄된 것만 같았다.
“고맙습니다. 조사하고 알아내는 것들이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니도 몸 조심해라. 린 갸도 조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이미 실종된 아이에게 두려움을 느끼듯 말하는 이장이었다. 성문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발걸음을 뗐다.
***
성문은 이장의 집에서 나와 곧장 민환의 집으로 갔다. 민환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는데, 린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곧장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절망적인 얼굴을 한 게 바로 그였다. 윤수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고, 민환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수색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먼저 집에 가보겠다고 한 그였다.
성문은 민환의 집 앞에 선 뒤, 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힌 뒤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기척도 없이 벌컥 열리는 문이었다. 동시에 알코올 냄새가 코를 덮쳤다.
“성문이냐.”
민환은 취한 채였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었다. 성문이 안으로 들어가자 쾅! 문을 닫는 그였다. 성문이 식탁 위에 있는 소주병과 맥주 캔을 보며 물었다.
“술 마신 거야?”
“그래, 너도 좀 먹을래?”
“아니, 괜찮아.”
“하긴, 너는 마실 일이 없지.”
민환은 글라스 잔에 소주를 콸콸 쏟은 뒤, 원샷을 했다.
“왜, 뭐 때문에 온 건데?”
민환이 반쯤 감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저기.. 아직 확실하진 않는데,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아.”
“살인? 누구? 누가 누굴 죽였는데? 중구가 마을 여자 죽인 거? 아님 네가 우리 아내 죽인 거?”
성문은 민환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민환이 진심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자세한 건 조사를 해봐야 하는데, 최근에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을 보면, 중구가 마을 여자를 죽인 거 빼고는, 다들 뚜렷한 살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거야.”
“그러면 그냥 사고인가 보지.”
“근데, 그 사고가 다 일관성이 있어.”
“무슨 일관성?”
“채연서를 성폭행했던 마을 남자들이 다 실족사했다는 거 알아?”
“몰라. 교장 선생님이 그러던?”
“그래. 윤수가 말해줘서 선생님한테 확인하고 오는 길이야.”
취한 눈을 하고 있던 민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윤수가 그걸 어떻게 알고?”
“린이 이야기해 줬대. 자기가 죽였다고.”
민환은 고개를 비스듬히 하며 성문을 쳐다봤다.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채연서도 똑같아. 린이 자기 엄마를 죽인 거래.”
“왜?!”
민환이 짜증스러운 투로 말했다.
“그게 말이 돼? 린이 왜 자기 엄마를 죽이는데? 왜? 왜!”
성문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뚜렷한 동기를 알 수 없었다.
“너 말이야. 나한테 그 딴 이상한 얘기 하러 온 거야? 그러면 차라리 윤수를 데리고 와. 윤수가 왜 그런 말을 한건 지 듣게.”
민환의 반응이 생각보다 거세지자, 성문은 여기까지 말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특히 린이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닫기로 했다. 아직 뚜렷한 증거도 없거니와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고 한들, 지금 현재 민환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일 정신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성문은 본격적으로 민환에게 자신이 이곳에 왜 온 것인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네가 믿지 못한다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 하지만 나도 이사 가기 전에 궁금한 게 있어서 말야.”
“설마, 네가 사건에 대해 수사를 하겠다는 건 아니지?”
이장처럼 성문의 말을 끊는 민환이었다.
성문은 마음을 이미 굳혔다는 눈빛으로 입을 뗐다.
“그러려고. 내가 보기엔 마을 사람들이 죽는 데에 이유가 있는 거 같아.”
“무슨 이유?!”
“지금부터 찾아야지. 미안하지만, 이 사건만 조사해 보고 마을을 떠날게.”
“어이가 없네.”
민환은 글라스 잔에 소주를 따랐다. 목을 뒤로 젖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신 뒤 식탁에 쾅! 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조사를 하시겠다? 어디 한번 해봐. 네가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살기를 띠는 민환의 눈동자였다. 성문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