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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6만 가지 생각

by 송아론

앞서 말했다시피 진주희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작은 어드바이스를 주었고, 그녀는 그 어드바이스를 자기 목에 거는데 썼기 때문이죠.


그녀는 죽기 전 저에게 감사의 뜻으로 밥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해 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죠. 동네에 있는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그녀는 복수에 성공했는데도 얼굴에 생기가 없고 의기소침해 보였습니다. 삶에 아무런 동기부여도 받지 않고 있었죠.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김치찌개를 맹물 떠먹듯 하더니 궁금하다며 물었습니다.


“이수 씨. 이수 씨는 왜 절 도와준 거예요? 저랑 관련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양손으로 삼각형을 만들며 답했습니다.


“그건 피라미드 꼭대기에 나눔이 있기 때문이에요.”

“나눔이요?”

“네, 사람들은 인생의 정점은 재력이다, 권력이다, 명예다, 그러지만 사실 다 틀렸거든요. 그들은 피라미드 꼭대기를 올라가 보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피라미드 정상에는 나눔이 있어요. 저는 그걸 실천하는 중이고요.”

“그렇군요...”


그녀는 다시 의무적으로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아마 제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보다 나를 위해 사니까요.


“실은... 어제 경찰이 저를 찾아왔어요.”


그녀가 이어 말했습니다.


“제가 이준범한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연락 왔더라고요. 저를 용의선상에 올린 모양이에요.”

“그래서 초조한가요?”

“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건 이준범을 죽이고 나니까 허무하다는 거예요. 인생에서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하고 나니까 공허하기만 하네요...”


그녀가 한숨을 푹 쉬고는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수 씨. 저는 이제 무얼 위해 살아가야 하죠? 저는 뭘 해야 하나요?”

저는 진지하게 답했습니다.


“꼭 무언가를 해야 하나요? 아니, 꼭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나요?”

“그러면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굳이 애써 살려고 하지 마세요.”

“네? 그게 무슨...?”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저는 이해하기 쉽게 말했습니다.


“삶에 의미가 없다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자살을 하라는 건가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저는 고개를 저으며 차분히 대답했습니다.


“자살이 아니에요. 말 그대로 죽는 거지. 공허와 허무로 가득한 그 마음을 죽어서 없애라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처럼 혼란에 빠져 있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증오하던 사람을 죽인 뒤에 남는 것은 통쾌함이나 호쾌함이 아니라는 걸. 진주희가 말한 대로 남는 건 허무와 공허뿐이었습니다. 부모님을 죽인 뒤 집에서 텅 빈 밥솥을 볼 때마다 그것을 느꼈죠. 부모님의 흔적을 지울 때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입었던 신발과 옷, 화장품 스킨, 로션까지 모두 없앴을 때, 저는 허무에 사로잡혔습니다. 마치 투명한 공기막이 저를 감싼 채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았죠.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작동’했던 것은 부모님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그 임무를 마쳤을 때는 이제 작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진주희도 저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겁니다. 이준범을 죽이고 보니, 내가 이제 ‘작동’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죠.


제가 빌딩 옥상에서 자살하려고 했다고 말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제가 죽으려고 했던 게 바로 이거였습니다. 적막한 세상에 저를 내던져 공기방울처럼 팡- 하고 터지고 싶었죠. 하지만 저는 운이 좋게도 빗물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목표를 가지게 되었죠. 거만한 종자들로부터 멍청한 종자들을 구제해 주자는 것을.


저는 망설이는 진주희에게 말했습니다.


“선택은 주희 씨가 하는 거예요. 저는 강요하지 않아요. 하나의 어드바이스를 드리는 것뿐이죠.”


진주희는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역시, 이수 씨는 좋은 분이세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시네요.”

“아니에요. 저는 주희 씨가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조언해 드린 거예요.”

“덕분에 편안해졌어요. 해답도 얻은 거 같고요.”

“그런가요.”

“네, 식사는 다 하셨죠?”

“네.”

“계산은 제가 할게요. 어서 나가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마치 한시라도 빨리 죽음을 얻기 위해 안달 난 사람처럼 말이죠.


그렇게 저와 그녀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숨겨둔 마음을 말했습니다.


“주희 씨.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요. 주희 씨를 소울 메이트로 생각해도 될까요? 당신 같이 좋은 여자는 본 적이 없거든요.”

“물론이죠.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수 씨도 제 유일한 남자 친구였어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잊지 않을 게요.”

“저도요.


저와 그녀는 마지막으로 포옹을 했습니다. 고개를 들자 밝은 보름달이 뜬 채로 우리를 비추고 있었죠. 저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진주희도 저 아름다운 별들 중에 하나가 된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자고.


***


이것이 진주희와 저의 스토리입니다. 그녀는 그날 밤 자기 방에서 목을 매 죽었습니다. 이준범에게 성폭행을 당해 너무나 괴로워 그를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는 유언장을 남긴 채요. 저는 그녀의 선택에 손뼉을 쳤습니다. 그녀는 역시 똑 부러지고 마음을 먹으면 기필코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로 인해 조금 귀찮은 일도 생겼습니다. 진주희가 죽은 그날 이후 누군가가 저를 미행하기 시작했거든요. 제가 CCTV를 꺼리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도 모자라 거리에 있는 온갖 CCTV로 저를 찍고 있죠. 밖에만 나가면 여과 없이 녹화 버튼을 눌러 저를 들여다봅니다.


그게 너무나 신경 쓰여 저는 일주일 전 심리 상담소에 가 그 사실을 말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노미향 박사님 에게요. 그녀는 67세에 백발로 유일하게 저를 이해해 주는 분입니다. 정성스레 김치찌개를 끓여주시던 돌아가신 외할머니와도 무척이나 닮았죠. 가끔 그녀 품에 안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억제하는 중입니다. 그녀가 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또 제가 어떤 식으로 파괴될지 장담할 수 없거든요.


각설하고 오랜만에 상담소를 예약하자, 그녀는 저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언제나 보던 할머니 미소였죠.


“안녕하세요, 박사님.”

“이수 군. 오랜만이에요. 그래, 그동안 별일 없었어요?”

“네. 별일은 없는데 최근에 이상한 일이 계속 생겨서요.”

“어떤 일이죠?”

“누군가가 저를 미행하고 있어요.”

“언제부터 그랬죠?”

“몇 주 됐어요. CCTV까지 대동하면서 저를 따라오더라고요.”

“에휴, 힘들었겠어요. 대체 왜 이수 군에게만 자꾸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길까요? 돌아가신 엄마가 빈방에 들어가질 않나, 인형들이 시끄럽게 떠들지 않나, 이제는 하다 하다 미행까지.”

“그러게요. 박사님도 제가 정신분열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죠?”

“아니요, 전혀요. 이수 군이 조현병 진단이 나왔다고는 하나, 저는 이수 군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마워요, 박사님.”

“그러니까 저한테 말해주세요.”

“네?”

“그 사람이 나중에 이수군한테 나타나면 왜 미행을 한 건지 저한테 말해주세요. 가능하죠?”

“네, 약속할게요. 어차피 곧 그 사람과 만날 것 같거든요.”


조미향 박사님은 미소를 짓고는, 차트에 ‘Persecutory Delusion’이라고 적은 뒤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정신과 병원에서 준 약은 다 먹었나요?”

“네. 먹었다 안 먹었다 했지만, 지어주신 한 달 치 약은 다 먹었어요.”

“제가 병원 원장님에게 말할 테니까, 상담을 해보고 약을 조금 더 늘려달라고 해보세요. 혹시 먹고 힘들면 저한테 바로 말하고요. 알았죠?”

“네.”


조미향 박사님은 자신의 상담소와 연계된 정신과 병원에 전화했습니다. 제가 곧 갈 테니 약을 미리 지어달라고 했죠. 그리고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수 군. 손 좀 줘보겠어요.”

“네.”


박사님은 제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요새 정말 힘든 일 없어요?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요?”

“네. 박사님을 만나고서부터 예전보다 많이 괜찮아졌어요.”

“지난번에 말했죠? 인터넷으로 상담을 한다고.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세상에는 힘든 사람들이 참 다양하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들을 도와주고 싶고요.”

“최근에는 어떤 사람을 상담했나요?”

“성폭행을 당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을 위해서 여러모로 도움을 줬어요.”

“그렇군요. 잘하셨어요. 저는 이수 군이 그런 활동을 하는 걸 지지해요.”

“그런데 박사님.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뭔가요?”


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박사님은 어떤 요리를 가장 잘하시나요?”

“음... 저는 김치찌개를 잘해요.”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김치찌개를 잘하셨는데,”

“원래 나이 든 사람들은 김치찌개와 된장국. 청국장 같은 걸 좋아하는 법이죠.”


저는 또 참지 못하고 두 번째로 물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나중에 김치찌개 좀 끓여주시면 안 될까요?”

“아직도 외할머니가 보고 싶은 가요?”

“네.”

“그래요 다음에 우리 집으로 오세요. 이수 군 외할머니처럼 맛있게 끓이지는 못하겠지만, 나름 괜찮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박사님.”


저는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의 집에 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죠. 하지만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찌개의 ‘맛’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저를 위해 정성 들여 김치찌개를 끓여주시는 박사님의 ‘행위’를 보고 싶은 겁니다. 거기서 잃어버린 집안의 온기를 찾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


진주희부터 조미향 박사님 까지.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네요. 오늘은 하루가 꽤 긴 느낌입니다.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인간은 하루에 6만 가지 생각을 한다는 걸. 하루에 숙면을 7시간 한다고 치면, 우리는 1시간에 약 3500번 생각합니다. 1분엔 59번 생각하고, 1초에 한 번꼴로 생각을 달고 사는 거죠.

그래서 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원숭이 마음’. 인간의 마음은 원숭이처럼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인간은 잘 때도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꿈이라는 게 있는 거죠. 다만 꿈이 희미해지는 유는 해마가 기억을 정리하는 동안 기억 회로가 끊어졌다 붙었다 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는 말했습니다.

“인간이 꿈을 꾸는 이유는 기억을 정돈하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정리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어떤가요?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나요? 마음 상태는 어떤가요? 행복한가요? 즐거운가요? 불행한가요?


인간은 보통 불행한 존재입니다. 왜냐면 하루에 6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80%나 하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단 20%밖에 되지 않죠.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로마제국 16대 황제이자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는 말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오늘 제가 자면서 생각할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은 무엇인지. 당신도 눈을 붙이면서 저와 함께 이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해요. 당신과 내가, 우리가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그럼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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