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준범은 어서 오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수줍은 얼굴로 눈인사를 했죠. 첫인상은 역시나 제가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깔끔한 외모에 훤칠한 키. 입가에 보조개가 들어가는 저 미소는 뭇 여성들에 호감을 제대로 샀을 겁니다. 그리고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겠죠. 많은 여성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며, 호감의 눈빛을 보낸다는 것을요. 그는 그 심리를 이용해 진주희에게 했던 짓을 했을 겁니다. 비겁한 약점을 잡고.
“처음 뵙는 분이네요. 어떤 거 주문하시겠어요?”
이준범이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습니다. 저는 대답 없이 핸드백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눈치챘다는 듯 편지 봉투를 받았습니다. 저는 도망치듯 카페를 나왔습니다. 저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런 일은 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용기를 내 번호를 물어본다던가, 메모를 남긴다거나, 대놓고 여자 친구가 있는지도 물어봤을 테죠. 카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인테리어와 커피의 향도 있지만 완성은 언제나 점원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준범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끔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방금 할 일은 그가 스스로 자아도취 하게끔 만든 것뿐이죠.
있을 까요? 마감시간에 맞춰서 다시 올게요. 여자 친구가 있는 분이라면 정말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수아라고 해요. 카페에 들른 적은 거의 없어서 제 얼굴은 기억하시지 못할 거예요.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봐요. 저는 언어장애인이라 말을 못 하거든요. 그래서 편지로 대신했어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이따 카페 마감하고 단둘이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글로 써서 드릴게요. 마감 시간에 뵀고... 혹시 여자 친구가 있는 분이라면 이야기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이준범은 편지를 읽고 기분이 날아갈 듯했을 겁니다. 이성에 대한 설렘이나 호기심보다는, 드디어 또 한 명이 걸려들었다고 생각했을 테죠. 게다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이라니. 본래는 기회를 보고 틈타 여성을 요리했겠지만, 오늘은 즉석에서 바로 요리해도 되겠다고 여겼을 겁니다.
제가 언어장애인이라고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진주희에게 오빠와 통화했다며 심리적 안정을 준 것처럼, 저도 똑같이 안정을 준 것뿐이죠. 게다가 마감 시간에 ‘단둘이’라니. 자기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준 것에 기뻐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저는 1시간가량 바깥에 있다가 드디어 마감 시간에 맞춰 다시 카페로 입성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그와 눈이 마주쳤죠.
“수아 씨라고 하셨죠? 저쪽에 앉아 계세요. 거의 다 끝났어요.”
저는 알겠다고 눈인사를 한 뒤 이준범이 지정한 곳에 앉았습니다. 손님은 3팀밖에 없는 상태였죠. 그는 저에게 묻지도 않은 채 진주희에게 주었던 것과 똑같은 라테를 주었고, 저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손님이 나가자 저에게 눈을 마주치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 미소를 보였다. 테이블을 치우고 식기를 세척하고 카운터 정리를 한 뒤, 현관문 안내판을 ‘Open’에서 ‘Closed’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원목으로 된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기 시작했죠. 그 블라인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걸어갔습니다.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가 들리자, 그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습니다.
“수아 씨, 편지는 잘 읽었어요. 그리고 다행히도 저 아직 여자 친구가 없네요?”
저는 눈웃음을 지었습니다.
“혹시 저녁인데 배고프지 않으세요? 샌드위치라도 드릴까요?”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어...?”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저는 이준범 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이러고 있어요.”
“편지에 분명... 아니 목소리가...”
그가 제 목소리를 듣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저는 핸드백에서 주사기를 꺼내 그의 척추에 바늘을 찔러 넣었습니다. 밀대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렀죠.
“아악!”
그가 몸을 홱 돌리며 팔을 휘둘렀습니다. 그 힘에 저는 힐이 적응되지 않아 뒤로 넘어졌습니다.
“뭐, 뭐야...! 너 남자야?”
“고마워요. 블라인드 쳐줘서.”
저는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으로 방긋 웃었습니다.
“시발, 지금 뭐 한 거야? 이 주사기 뭐야?”
그가 허리를 더듬으며 입을 뗐습니다.
“글쎄요. 조금 있으면 곧 알게 될 텐데 미리 말해 드릴까요?”
“미친 새끼!”
이준범이 넘어진 제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저는 무방비 상태로 맞았습니다. 일방적인 구타였죠. 동시에 진주희가 느낀 고통이 무엇인지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척 아쉬웠습니다. 이런 식의 폭행은 저에게 물리적 고통만 있을 뿐이지, 공포는 부족하거든요.
당신은 반드시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무너질 때는 고통이 아니라 공포를 느꼈을 때라는 걸.
고문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문을 받을 때 고통 때문에 실토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게 아닙니다. 고통이 아니라 공포를 느꼈을 때 실토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괴로운 고문을 받아도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은 공포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담대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준범에게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과연 그는 대범함을 가지고 있는 자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인간에 불과한지.
그리고 그 신호에 맞춰 그가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뭐... 뭐야...”
“뭐긴요. 이젠 제 차례인 거죠.”
이준범이 허리를 매만지며 입을 뗐습니다.
“시발... 이거 마취제야...?”
“맞아요. 당신은 저를 죽일 수 있었던 5분의 시간을 모두 할애했고, 이젠 제가 당신을 실험할 차례예요.”
“뭔 개소리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글쎄... 어느 영화 보면 이런 대사가 있더라고요. 사람이 사람 죽이는 데 이유가 있어? 근데 전 이유 없는 살인은 하지 않아요. 왜냐면 그러면 즐길 거리가 부족하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저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답니다.
“전 당신과 같은 전주 이 씨, 44대 연산군파 13세손이죠. 그러니까 준범아. 족보를 보면 내가 너보다 항렬이 높아. 삼촌이야. 삼촌을 이렇게 때리면 되겠어?”
빙그레 미소 짓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죠.
저는 제 할 일을 위해 커피 머신 쪽으로 갔습니다. 샷잔에 에스프레소 4잔을 담은 뒤 양손으로 들고 왔습니다.
“준범아, 잘 봐.”
저는 그의 오른쪽 어깨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부었습니다.
“아악...! 왜 이러는 거야. 이유라도 말해줘!”
“이유? 꼭 그걸 말해야 알겠어? 너 그렇게 멍청한 애야?”
이번에는 왼쪽 어깨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뿌렸습니다.
“아아악!”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비틀자, 등에 부었습니다.
“으아악.,.! 제발....!”
저는 이준범 앞에 쪼그려 앉은 뒤, 마지막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말했습니다.
“준범아, 봐봐. 이게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잖아? 그런데 신기하게 식도로 넘어가면 아무렇지도 않다. 너도 알지? 그러니까 3초 안에 마셔봐. 그렇지 않으면 네 얼굴에 부을 거야.”
하나.
둘.
이준범은 제가 들고 있는 에스프레소 잔을 빼앗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습니다.
“어때? 하나도 안 뜨겁고 맛있지?”
그가 숨을 헐떡이며 입을 뗐습니다.
“말해... 누가 너한테 사주한 거야....”
“인마. 그런 건 네가 추측해야지. 자꾸 재미없게 이럴래?”
저는 일어서서 이번에는 머그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왔습니다. 이준범에게 잔을 건넸습니다.
“자, 이번에도 다 마셔봐. 빠르게 마시지 못하면 입안이 헐어버릴 거야.”
그는 고민하더니, 이내 벌컥벌컥 에스프레소를 모두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
“커억... 컥...컥..!”
혀에 입은 화상 때문인지 기침을 토했죠.
“잘했어.”
저는 이준범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맛보기는 끝났고, 이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시간이야.”
저는 주방에서 바 스푼과 포크, 그리고 과도를 가져왔습니다. 이준범이 뭘 하려는 거냐는 표정을 짓자, 포크로 그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내려찍었습니다.
“아악!”
그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이내 하반신이 마비되어서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놀랐지? 아플 줄 알았는데.”
푹-
저는 다시 포크로 이준범의 허벅지를 내려찍었습니다. 그가 손으로 막자, 과도도 그의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진짜로 맛본 고통에 이준범은 신음을 토했죠.
“그러니까 왜 아프지도 않은데, 막아.”
저는 다시 포크로 이준범의 허벅지를 한 번, 두 번, 세 번 내려찍었습니다. 마치 배고프니까 빨리 밥 달라는 아이처럼 신명 나게 찍었죠.
“제, 제발 그만해...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할게... 그러니까...”
“얀마,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는 입술을 부르르 떨며 좌절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그의 양다리를 붙잡고 앉아 있는 그를 뒤로 넘어트렸습니다.
“자, 그럼 이제 바지 좀 벗어 볼까?”
“바, 바지...?”
“그래. 바지.”
그는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가 왜 바지를 벗어야 하는지, 무슨 짓거리를 했길래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얼빠진 얼굴을 했습니다.
“바지 벗으라니까?”
여전히 망설이자,
“벗으라고 새끼야!”
저는 과도로 이준범의 종아리를 찍은 다음 세로로 그었습니다. 결국 피를 봐서야 빠르게 바지춤을 푸는 그였죠. 저는 그의 바지를 끌어당겨 손수 벗겨준 뒤 입을 뗐습니다.
“팬티도 벗어.”
“제발... 제발... 잘 못 했어요,.. 그러니까 한 번만...”
“안 닥쳐?”
저는 과도로 그의 아킬레스건을 그었습니다.
그러자,
“아악...!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이준범이 난데없이 크게 소리쳤습니다. 저는 누워 있는 그의 얼굴을 향해 사커킥을 날렸습니다. 정신을 잃고 몸을 축 늘어트렸죠.
“하여간 말은 더럽게 안 듣네.”
저는 하는 수 없이 직접 이준범의 팬티를 벗겼습니다. 그를 돌려 눕힌 뒤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죠. 약 5분간 시간이 흘렀을까? 이준범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등 뒤에 서 있는 저를 보더니 몸을 앞으로 돌리려 했죠. 저는 왼발로 그의 어깨를 밟은 뒤 말했습니다.
“자, 이제 똑같이 느껴보는 거야. 알았지?”
“뭐, 뭐 하시는 건데요...”
“뭐긴 인마. 네가 평소에 했던 거지.”
저는 25cm의 바 스푼을 들고는 무방비 상태로 놓인 그의 항문을 공략했습니다. 항문 안에 스푼을 집어넣었죠.
“아악!! 하지 마! 제발!”
“넌 이럴 때 멈췄어? 안 멈췄지?”
저는 씩 웃으며 이준범 항문에 더 깊숙이 스푼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는 실성한 것처럼 소리를 쳤고, 저는 하는 수 없이 테이프로 그의 입을 막았죠. 이제야 본격적으로 짜라투스라의 말을 따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네 이웃이 네게 위해를 가하거든, 너는 얼른 다섯 배의 위해를 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