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3월 수업을 할 수 없는 새 학기 교실 현장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020년 3월,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없는 빈 교실은 내 짧은 인생에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짧은 교직의 경험과 학창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도 지난 상황은 쇼크 그 자체였다. 교육 현장에서 3월은 분주하고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지만, 2020년의 3월은 교육의 첫 페이지에서 사라졌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멈춰버렸고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 차 사랑의 온기가 느껴지던 교실은 이제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들과 나는 이런 고된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했다. 늘 성장할 수 있다는 기쁨과 성장해야 하는 부담이 뒤 엉켜 지칠 법도 한데, 우리는 변화의 연장선을 계속 그려 왔다.
그렇게 다시 2021년 3월을 맞이했다. 코로나의 위협은 여전했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단절을 생각하니 사람을 직접 만나 경험하고 삶의 연결을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된 것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올 3월은 그 어느 순간보다 중요했다.
서로를 만나 관계를 맺고 경험을 공유하며 스스로 한계를 깨닫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교육이라면, 학교는 만남의 공간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유용성을 넘어서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새로운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 내는 공간인 것이다.
격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제한적인 만남과 수업이지만,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을 명확히 인식하며 서로가 필요한 이유, 만나야 할 이유를 함께 쌓았다.
등교수업을 진행하는 주간에 반 아이들과 청소를 했다. 3월 18일(목) 환경미화의 날은 등교 주간을 고려하여 정해졌는데, 그 주 월요일부터 아이들과 나는 소란스럽게 준비했다.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지는 훨씬 많았는데, 언제 이렇게 먼지가 쌓여나 싶을 정도로 먼지는 수북히 쌓여 있었다.
청소를 하겠다고 마음 먹으니 영어과 김OO 선생님께서 전기 물걸레를 기부해 주시고 먼지 털이에 전문가인 국어과 정OO 선생님도 힘을 보태 주셨다. 하고자 마음을 먹고 주변을 돌아보니 돕는 손길이 많았다.
돌아서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분개했다. 처음의 상태로 돌릴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그랬다. 코로나 이전 시대로 쉽게 돌아갈 수 있다는 집착이 나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코로나에 원망을 실어 보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결국 코로나는 핑계가 되었다.
정면승부가 아닌 회피하는 방향으로 나는 몸을 틀었던 것이다.
청소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목적과 닿아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처음과 같은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스레 원래의 상태와 멀어지는 사실에 순응하지 않는 청소는 깨끗함과 차원이 다른 용기와 연결 되어 있다. 청소는 우리에게 그 용기를 선물 해 주었다.
3월은 참 분주하다. 마음도 몸도 겨우내 움츠려 잠든 세포를 하나씩 깨워 시작을 알려준다. 늘 맞이하는 3월이지만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 온 올해는 다르다. 실패할 용기를 가지고 아이들과 나는 교실의 자리 배치를 바꿨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마음을 새롭게 하니 넓어진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년 우리반 이었던 OO이가 달라진 교실배치를 보고 매우 맘에 들어한다. 듣기 좋은 소리를 쉽게 하지 않는 녀석이기에 OO이가 건네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이 내게 기분 좋게 들린다.
처음모습 그대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 청소에 우리반 아이들과 나는 오늘도 힘을 쏟는다.